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RC가 몸과 마음의 병발적 발생을 설명하는 일원론임을 설명하는 출발점

‘형상적(figurative)’과 ‘조작적(operative)’ 사이 삐아제의 구별, 그리고 (몸을 포함한 물리적) ‘행하기’와 (마음의) ‘조작하기’ 사이 병발적(竝發的) 구별은, 그의 저작을 통틀어, 그의 이론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형상적’은 감각 영역을 지시하며, 운동(運動)으로 생성된 감각들(kinaesthesia: 筋運動感覺), 유기체의 (물질)대사로 발생된 감각들(proprioception: 自體發生感覺), 그리고 지각에서 특정 감각 데이터의 합성을 포함한다. ‘행하기’는 그러한 감각운동 수준에서 행위들을 가리키며, 감각 대상들과 몸 운동을 수반하기에 관찰 가능하다. 특정 감각신호들(과/또는) 특정 발동신호들로 합성된 패턴을 얻는 그 어떤 추상도, 삐아제가 ‘실험-관찰적(empirical)’이라 부른 것이다. 감각운동 신호들을 아이가 연계, 결합시켜 구성한 대상–개념은, 그러므로, ‘실험-관찰적 추상’이 된다. 

     이와 달리, 특정 감각 소재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가 하는 일에 따라 결정되는 개념 구성의 그 어떤 결과도, 삐아제 용어로, ‘조작적’이다. ‘조작들’은, 그러므로, 언제나 마음의 조작들이며, 자체로, 관찰될 수 없다. 이들 심적 과정들에 대한 반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라면 무엇이든, ‘반성적 추상’이라 불린다. 삐아제는 이러한 추상의 형식을 4가지 범주들로 분류했다(1977); 이것들은 5장에서 논의될 것이다.

 이들 추상 형성의 소재(素材)는, 생각하기 주체 스스로 펼쳐내 반성이 행해졌던 조작들로 이루어진다. 고로, 여기에 로크가 ‘관념들의 두 번째 원천’이라 불렀던 것과 명백한 유추(類推)가 있다 (2장을 보라). 

에서,

<(몸을 포함한 물리적) ‘행하기’와 (마음의) ‘조작하기’ 사이 병발적(竝發的) 구별은>,

관찰자가 피험자의 반사에 기반을 두고,

행하기와 조작하기로 

생각하기와 행하기 스킴을 분화, 발달시켜 가는 과정을, 그리고

마침내 몸과 마음이라는 일원론적 병발적 발생을, 

설명하는 시작점이다.

 

이는,

유물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에서, 

‘몸과 마음’의 관계를 부수발생적(附隨發生的) 관계, 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관계로 본 것과는 달리, 

일원론적 병발적(竝發的) 관계로 보는 방식이다. 

 

여기서, 

용어 '부수발생적(supervenient)’은, 철학에서, 

(개략적으로) 시스템의 저차적 속성들이 

고차적 속성들을 결정하는 사례를 기술하는 데 사용되는 존재론적 관계를 지시한다. 

 

용어 '병발적(concomitant)’은, 윗 용어와 같이, 

다른 것의 귀결로서 따라 발생한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윗 용어는 우연적인, 예기치 않은 것을, 그리고 단방향적 관계를 지시하는 반면, 

이 용어는 상호 의존 발생적이기에 쌍방향적 관계를 지시한다. 

 

이상에서 보듯,

삐아제의 출발점은 관찰 가능한 반사들이며, 이후,

설정되는 가설들 모두 관찰 가능한 것들로 뒷받침된다.

여러 RC들에서도 전제로 깔고 출발하는 지점은

오늘날 과학적 관행에서 당연시하는 사실들로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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