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지각(그리고 여타) 경험들의 코어'로서 '자아'만이 개체 자신의 제어와 책임의 진정한 중심이다.

  ..... 두 번째, 내가 눈을 움직이며 머리를 돌리거나 창가로 걸어가는 경우, 지금 겪고 있는 지각 (그리고 여타) 경험들의 중심(核)으로서 내 자아를 나는 격리해낼 수 있다. 경험의 중심으로서 이러한 자아는 수동적인 ‘것’이기보다는 능동적 에이전트로 보인다. 그러한 ‘것’은, 사실, 내 눈을 움직일 수도, 내 머리를 돌릴 수도,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 - 그리고 그것은 또한 시각 또는 경험 장의 특정 부분에만 주목한다. 이러한 능동적 자아는 볼지 말지, 움직일지 말지, 연필을 잡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일정한 한도 내에서, 이것은 경험할지 말지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        

 

에서,

 

‘지각 (그리고 여타) 경험들의 중심(核)으로서 격리시킨,

'능동적 에이전트'로 보이는 이 자아는,

극한의 '나'가 작용하고 있는,

인지하기 주체이자 행위하기 주체가 

머무는 코어(core) 또는 로우커스(locus)다. 

 

이들 용어는 

무언가가 일어나거나 발견되는 중심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다. 

 

경험의 중심으로서 이 자아만이,

모든 생각하기와 행하기에 대해 제어권을 가지며,

따라서, 그에 책임을 실을 수 있으며,

우리가, 통상, '나'나 '너'로 지시할 때,

그 개체의 중심으로서 주목하는, 그리고 

주목해야 할 자아다. 

 

또한, 

변화에 있어어도,

중심에 있는 자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상화된 자아로서, 

지각된 몸과 반사된 이미지 또는 

사회적 개성을 지닌 나, 또는 

자기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 같은 자아가

일상에서, 세상을 마주하며, 

경험의 중심, 코어에 인입될 때,

그 중심에서는 자아의 중첩이 야기된다;

이는 변화의 중심으로서 자아의 제어권을 상당 부분

인입된 자아가 장악할 수 있다.

 

고로,

인입된 자아를 코어에서 밀어내는 일은,

경험의 경계면에서, 인지하기와 행하기에 주의를 집중시켜 

인식, 행하기의 지속적 재구성을 북돋는 수행법에서,

가장 먼저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과제다;

제어와 책임을 져야 할 곳에 지우는 일이다

 

실상, 모든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요, 

자율적 삶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이 중심, 코어에, 

대상화된 자아들을 일상적으로 유입시키는 경우,

코어의 작업에서 생동성과 활기가 약화된다는 것은,

약간의 반성적 생각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복구하는 방법은, 언제나 그렇듯,

그러한 유입의 치(恥)를 알아차리는 것으로, 

코어를 정결히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RC(1995) 역자 주석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