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empirial’을 ‘경험적’이라 번역했을 때,
이를테면, ‘경험적 구성’이라는 구절을 대하는 경우,
이를 보고, 일반적으로, ‘실험-관찰적 구성’이라고
바로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실험-관찰적’이란 단어를 들을 경우,
사람들은 이런 단어는 특정 학, 또는 기술과 관련된 경우라 생각하지,
자신들의 일상적 행위와 생각하기 방식들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일매일 타자들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이를 행하고 있음에도 그러한다.
이때,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은,
과학적 방법의 절차를 타자들과 상호작용에 적용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 과정에서,
세운 타자 모델이 어떤 것인가?
이 과정에서,
협력으로 달성코자하는 기대, 목표 설정은 적절했는가?
이 과정에서,
이해하기의 이해하기의 달성 정도는 어느 수준에서 진행되었는가?
전체적 반성을 통해,
타자 모델에 대한 재구성,
협력의 수준과 기대,
목표의 재설정,
이해하기의 세심하고 정교한 진전, 등등으로 이어지면서,
개체로서 자율적 권능들은 확대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밀어붙이기, 은근한 압박, 권위나 권력의 사용, 등등으로
타자의 자율적 권능을 침해하는 순간,
타자는 그것을 제약으로 받아들이며
생존을 위해 거짓 승인, 인정하는, 즉, 체하거나 척하게 되는,
아무리 대등성을 자존으로 삼는 인간이라도, 마지못해 인정하게 된다.
강압자, 독재자한테, 그렇게, 자율은 내팽개쳐지는 것이다.
그의 타자들의 자율이 상실된 채, 그의 자율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인간적 활용이 아닌, 정확히, 인간의 도구적 도구적 활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선 것이다.
우리 정신들이 제자리를 못 잡고
이 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참극의 근본 원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