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장애와 유익함이 수행에 미치는 영향
레오폴드 코르

폴 킹스노스의 "목하 경제 붕괴는 '큰 것'의 위기다"

필자: 폴 킹스노스 

 

원문 링크

http://gu.com/p/32697

 

목하 경제 붕괴는 '큰-것의 위기다'

 

레오폴드 코르의 50년전 경고, "거대한 지구적 체계는 안으로부터 터지기 전까지 커갈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krauze

Illustration by Andrzej Krauze 

붕괴를 거치며 사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다. 아마도 가장 이상한 것은,
붕괴를 붕괴라 인정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부채로 가득 채운 반세기 "성장"의 (참혹한) 결과를 그럴싸하게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으며, 경제와 확실성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의 선출된 지도자들은 용감하게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댐이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금이 가 있음을 아무도 먼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순간 정치 지도자들의 말을 듣는 것은, 
신앙을 잃어버렸지만 필사적으로, 그 자신한테만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자신의 당에 충실하게 단단한 상투적 문구들로 연설하는 
와치 닉 클레그(영국 부총리:자유민주당), 데비드 케머론(영국 총리:보수당), 또는 에드 밀리반(영국 노동당수). 
유로존의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처럼 척하고 있는 
안젤라 메르켈(독일), 니콜라스 사르코지(프랑스) 또는 조지 파팬드로(그리스)가 그들이다. 
"성장"에 관해 말할 때 버락 오바마 또는 벤 버냉키의 얼굴 표정을 보면 , 
마치 화산 불구덩이에 날조된 돈이 든 가마솥을 쏟아부으며 고통을 달래는 이교도 신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해답을 찾기 위해 다른 곳을 주목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는 또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그것은 
주변부에서 머물던 생각하기가 중심 무대로 이동할 때 그렇다. 
새로운 관점에 대한 욕구는, 산산이 부서져 내릴 때에야, 뚜렷해지며, 
이때,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거대 이념들을 갖고 나타나 
그것을 기꺼이 먹여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았다.
 
그러나 여기 하나의 생각이 있다: 
거대 이념들이 바로 그 문제의 일부라면? 사실, 문제는 크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 
세계 무대에서 현재 펼쳐지고 있는 위기는 성장의 위기다. 
우리가 통상 듣는 바, 위기는 너무 적은 성장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성장 때문이다. 
은행들은 너무 커져서 그들을 붕괴시키는 것은 세계 경제 전체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그들은 엄청난 공적자금을 동원해 구제되었다. 
그것은, 이어, 서구 나라들의 거리에서 사회적 위기를 촉진시키고 있다. 
유럽연합은 너무 커지고 너무 책임이 없기에 자체로 붕괴되는 위험에 처해졌다. 
회사들은 너무 커진 나머지 민주주의를 괴멸시키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이해에 봉사할 전지구적 금권정치를 건설하고 있다. 
전체로서 인간 경제는 너무 커져서 이 혹성의 대기 성분이 바뀌는 것도, 
엄청난 인구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일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큰 것들의 위기를 보고 살았더라도 놀라지 않았을 한 사람, 그 사람은 레오폴드 코르다.
코르는 당신이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중요한 정치 사상가로서 훌륭한 주장을 했다.
맑스와 달리, 그는 세계적 운동을  창설하거나 혁명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하이에크와 달리, 그는 현대 경제의 경제적 규칙들을 고쳐 쓰지 않았다. 
코르는 겸손하고 자신을 나무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의 생각을 반세기 동안이나 주창자와 비판자들이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생각들이 무시당한 것은 권력에 굶주린 자아, 즉, 혁명가 또는 금권정치가들을 즐겁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코르의 메시지는 그들한테는 노골적 도전이다. 
"뭔가 잘못됐을 때마다", 그는 주장하기를, "그건 너무 크다."    
 
코르는 1909년 오베른도르프라는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유년기를 보내고, LSE(런던 정경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했으며, 
스페인 내전 동안 전시 기자로서 아나키적 도시 국가들을 경험했다. 
나찌 칩임 후 오스트리아를 떠나게 했던 사실(그는 유대인이었다)은 
권력과 그 남용에 대한 그의 점증하는 의혹에 기여했다.
 
미국에 정착하자, 코르는 그가 생각한 것을 뚜렷히 하고자 책을 쓰기 시작했다. 
1957년에 출판된, 국가들의 해체(The Breakdown of Nations)는 
그 당시에는 급진적이었던 것들을 펼쳐보였다: 
훨씬 큰 권력이나 초국가들보다 작은 국가, 작은 민족, 그리고 작은 경제들이 
더 평화롭고, 더 번창하며 그리고 더 창조적이라고. 
가능한 한 유행을 타지 않도록 만들어진 주장이었다.  
이것은 우주 시대에 - 말인즉, 인류의 운명을 재촉하는 진보적이고 
거대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높은 자신감의 시대에 -  새벽이었다.  
환대받는 정치 사상가들은 통합된 인간성을 향한 다음 단계로서 
세계 정부의 창조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코르는 그러한 만연한 분위기에 맞서 싸우는 데 진지했다. 
그는 후에 냉담하게 말하기를, 
"나의 비판자들은 나를 시인으로 간주함으로써 나의 관념들을 퇴짜놓았다." 
 
코르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사회 문제들이 야기되는 것은, 

사회 또는 경제 조직의 특별한 형식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의 크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군주제 - 모든 것들은 
그가 "인간적 규모"라 칭한 정도에서는 잘 작동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제하는 체계들에서 일정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규모." 
그러나 일단 규모가 근대 국가 수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시스템들은 압제자로 기능한다. 
창조적 자극을 필요로 했던 체제 또는 이데올로기 변화가 
- 수없는 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 그런 억압을 방지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문제가 크기 자체에 있지 (체제나 형식, 구조와 같은)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를 묘사하는 것으로써, 코르는 입증했다; '시스템에서 또는 시스템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너무 많은 권력을 갖게 될 때, 그것을 남용한다.' 
그러므로 과제는, 개인, 조직, 또는 정부가 손에 쥘 수 있는  권력을 제한하는 일이다.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더 많은 통합이 아니라 더 많은 분할이다. 
세상은 크기와 권력에서 거의 동등한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야 한다; 
그 국가들은 성장을 제한, 그래서 특정 단위의 우세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국가와 작은 경제들은 더욱 유연하며 경제적 격동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고, 
위험한 전쟁을 치룰 능력이 부재할 것이며, 
그리고 자신들의 국민들에 대해 보다 더 책임감을 갖출 것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그들은 보다 창조적이 될 것이다.  
<국가들의 해체>는, 중세와 초기 근대 유럽을 촘촘히 살피면서, 
서구 문화의 수많은 영광들, 대성당들부터 위대한 예술, 과학적 혁신들은 
모두 작은 국가들이 만든 것들이라고 독자들을 설득하는 눈부신 일을 해냈다.    
 
코르의 비젼의 번쩍이는 예지적 힘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은 <국가들의 해체>를 읽을 필요가 있다. 
인정하게 됨으로 전율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코르가 예측하기를, 
큰 것들은 오로지 더욱 커지는 쪽으로 이끌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일정한 한계를 벗어난 것들은 어떤 것이든, 다룰 수 없는 그 (커진) 크기들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을 겪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한들을 뛰어넘어 커진 것은, 
자신이 이미 가진 권력을 운영하기 위해 더 많은 권력을 축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장은, 단 하나의 가능한 종착점, 붕괴에 이를 때까지는,  
암과 같은 멈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코르가 반세기 전에 경고했던 지점에 도달했다: 
"삶에 봉사하는 성장 대신, 이제 삶이 성장에 봉사해야만 하는, 
바로 살아가는 이유(존재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지점에 말이다.  
코르의 "크기들의 위기"는 우리한테 책임이 있고 형식에서 참이다; 
우리는 더 밀접한 재정적 통합, 더 촘촘한 세계적 통제, 지리공학적 계획들, 
더 많은 경제적 성장과 같은 똑같은 더 많은 형식들에 달라붙어 애쓰고 있다. 
큰 것은, 
성장-기계를 계속 돌려야 하는 남부럽지 않은 과업을 맡은 이들한테만큼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한테 놀랄 일이 아니다. 코르한테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몇몇 유토피아적 비판가들과 달리, 
급진적 변화에 대한 열망과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을

결코 혼동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내린, 
음산한(비관적인) 그러나 보기드물게 정직한 결론은, 
거대한 세계 체계는, 죽어가는 별처럼, 결국 자체로 망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의 전체 사이클은 모두 다시 시작될 것이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 "거대 권력 지배의 지적 빙하기 사이에서", 
세계는 "다시 한번 작아지고 자유로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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