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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2012

민주주의의 생혈(生血)(Democracy's Lifeblood) - Frances Moore Lappe and Paul Martin Du Bois

민주주의의 생혈: 능동적 시민되는 슬기 실천하기 
                                     

Frances Moore Lappe and Paul Martin Du Bois 


재정 개혁 캠페인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더욱 중대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 어떤 선거보다도, 심지어는 정부 자체보다도 더욱 중대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부를 조성하는 한 구조일 뿐이라는 생각은 도전받아 마땅합니다. 우리 경험과 연구로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정부를 조성하는 구조 그 이상의 것이 되기까지, 그리고 민주주의가 하나의 문화, 즉,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문화가 되기까지, 우리는 미국의 악화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들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이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참입니다.


첫째, 오늘날, 환경과 교육에서 범죄와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각한 문제들은 우리들 각자가 모두 연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해법들에는 우리의 태도들, 우리의 행동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통제하는 가치들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해법들이란 우리 자신들, 대다수가 변할 맘을 생길 때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둘째, 최선의 해법들이란 해당 문제들을 직접 경험하며 공헌한 이들의 경험, 통찰력들, 그리고 창조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치료 중인 의사를 안내하는 유방암 환자들이며, 공적 기금들이 자신들을 돕는 최선의 방식을 고안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며, 또한 경찰의 계속되는 실패로 효과적 전략을 구사하는 마약상들과 맞서는 시민들입니다.

 

셋째,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을 통제하고 있는 이들 대다수 관념들, 즉, 만연한 “공적 신화들(public myths)”을 새로운 형식으로 구성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 당장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들 신화들에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숙고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당신이 시(市)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것은 언제나 그랬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환경과 경제적 보장 사이에서 번영(혹은 성장)과 형평(衡平) 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경쟁이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부와 관련된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들은 사업, 학교, 또는 매체들에 해당되는 것들이 아니다. 정부는 우리 복지의 적이다.(정부를 우리 복지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감지한 미국인들의 수는 1950년대 16 퍼센트에서 1990년대에는 셋 중 둘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들 신화들은 실제적으로 우리가 가능한 것들이라 여기는 것들에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신화들은 하나의 결과 <말인즉, 미국인들은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투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표하기, 그 자체는 권력에 대한 경험이 아닙니다. 투표하기가 우리한테 그밖에 시민들과 함께 싸우며 만만챦은 이슈들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경험을 주지는 않습니다. 투표하기 위해 새로운 기량들을 배우고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투표하기는 “현 상태 그대로(the way thinngs are)”에 대한 우리의 맹종을 극복하는 것을 북돋지 않습니다. 투표하기는 해법들이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하한 해법도 없는 경우, 투표하기는 의미가 없습니다(이것이 필시 우리 대다수가 투표하려다 하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 공적 문화의 변화는, 우리의 직접 경험에, 우리가 내내 관찰하고 있는 것들에, 그리고 매체를 통해  우리가 매일 받아들이는 부단한 이미지 공습에 응대하며 이루어집니다. 가장 철저한 개혁조차도, 미국인들이 매체를 통해 매일 받아들이는 메시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고도로 집중된, 기업 권력을 금지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영향력은 직접적 광고에, 그리고 광고를 미끼로 프로그램에 교묘하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복지는 가난을 야기한다”와 같은 생각이 어떻게 대세를 이루었을까요? 보수적 재단들은 Charles Murray가 "Losing Ground"를 쓰는 것과 그것에 대한 매체를 동원한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 책의 출판은 향후 10년간 입법에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효과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심하게 계획되어 기업들의 지원을 받고, 수백의 사람들이 노고를 들여 논쟁하면서 인기 있는 매체들이 공적 문화를 형성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공적 관념들은 법안 선택에 대해 선거 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갖는 만큼의 권한들을 만들어냅니다. 작동하기 위해서, 아마 법으로까지 제정되기 위해서, 그러나 분명 보다 많은 생계 수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재정 개혁 캠페인은 (그것에 민주주의를 부여함으로써) 깊숙한 문화적 변화 과정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와 같은 변화는 미국인들의 공적 생활을 새로운 방식들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한테 이해되고 있는, 시민 자격이란, 타고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배워 익힌 슬기, 즉 예술입니다. 능동적 실천을 통해 시민권을 효과적으로 쓰는 슬기들을 발달시키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가 실제 해법들을 고안하는 데 필요한 기량들과 지혜를 갖는다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현재 집중된 소유 혹 부자들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공적 신화들을 재고할 수 있을 것이며, 변화 자체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뿌리깊은 냉소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권력 창조하기 


공적 세계에서 우리의 합당한 이익을 얻어내고 가치들을 확립시키는 우리 깜냥을 우리 자신의 권력으로 이해하는 바에 대한 수긍없이는, 위대한 평등과 자유를 향한 의미 있는 조치들을 가로막고 있는 신화들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바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우며,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문제 해결 과정에 끌어들이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학교, 사업장, 매체들, 그리고 공동체의 결정 과정에서 경험하며 그 가운데 권력을 형성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들은 미국의 모든 공동체들에서 창조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다채로운 풍선들로 장식된 한 회의장에 들어갔을 때 떠들썩하게 논의 중에 있었습니다. 중산층 백인들, 멕시코계 미국인 농장 노동자들, 그리고 몇몇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소노마 카운티 신뢰에 기초한 공동체 조직하기 프로젝트(Sonoma County Faith-Based Community Organizing Project)의 성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민들이 한 해 동안 요구했던 것들에 대해 카운티 공무원들이 공식적으로 해명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습니다.


연단에는 두 명의 공무원이 있었고 모두 조금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짜 “상관들”, 자신들의 봉급을 지불한 사람들이자 평범하지만 영향력을 갖는 시민들에 의지하는 사람들한테 자신들의 최초 업무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6피트 높이의 “통지표들”이 무대 가운데 세워졌고, 각각에는 이들 공무원들을 채점할 근거들이 큼직한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조직하기 프로젝트 지도자들이 각각의 총합을 크게 소리치고 등급을 기입하자, 모인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 두 공무원 모두, 중요 요청을 지연하고자 주택청에 보낸 “불비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전부 A 등급을 받았습니다.


조직하기 프로젝트는 그 해 동안 자신의 거의 모든 목표들과 관련해서 지방 정부의 협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일은 모인 사람들한테 자랑스러운 일이었으며, 물론 그 공무원들한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왜 이들 공무원들이 그날 밤 눈에 뛰었을까요? 모인 시민들은 전년도 내내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문제들에 대한 해법들을 찾는 데 기꺼이 협력함으로써 그들의 존경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시민들이 그 공무원들한테 등급을 매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전에 공약한 것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시민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역할을 선출된 공무원들한테 업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 그 이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목표의 우선 순위들을 정하고 그것들을 현실화시키는 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 자신들을, 당면 사안들을 도울 통찰력과 재능들로 가득찬 자산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자신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은 관료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민주주의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일종의 양방향 책무를 창조하는 시민들에 대한 적절한 하나의 사례였습니다. 


하나의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에 걸쳐 엄청난 수의 사례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들을 창조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수 백개의 도시들에서 - 8년여에 걸친 야심찬 계획의 85%를 성취한 Chattanooga 시민들의 비젼 프로세스에서부터 현재 150개 지방에 있는 건강 협력 공동체들, 그리고 North Dakota와 Montana의 주(州) 전체에 퍼져 있는 “여론 협의회들”에 이르기까지 - 시민들은 그들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관여하기 위해 새로운 포럼들, 말인즉, 공공의 광장들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시민들은 자신들과 공무원들한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집단적 관념들에서 산출되고 있는 구체적 결과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단지 정치적 경합(競合)에 대한 통제 규칙을 바꾸는 것으로는 그와 같은 관계 형성에 관한 것들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러한 규칙들의 변화로 의사 결정을 행하는 “위에 있는” 분들과 우리들 사이 거리가 줄어들 일은 없습니다. 달리 말해, 정치 모금 따위가 '돈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개입해야 한다'는 바와 같은 걸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을 다시 정리하면, 그것은 단지 망가진 정치 시스템의 일부를 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쓰는 문화를 창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자신의 직접적 참여 외에도, 이러한 심도 깊은 문화적 변화에 대한 요구는 세 가지 주요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이 아직 보고 있지 못한 깊숙한 문화적 변화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적 동물들한테 최고의 배우기 방식은 타자들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대개는 보이지 않는 이들 민주주의의 비약적 진전들을 우리가 “미국의 태동하기(quickening of America)”라 부르는 것은, 태동하기가 의미하는 것이 다 자라 태어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생명에 대한 최초의 북돋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들에서 더욱 민주적인 문화를 향한 이들 최초의 북돋음들이 행해지고 있을까요? 


● 20년 사이 전국적인 공동체 발달 단체들은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 (소노마 카운티의 신뢰에 기반한 공동체 조직하기 프로젝트와 같이) 행정구역에 기반한 시민 조직하기는 최근 몇해 사이에 극적으로 성장했으며, 현재 200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 최소한 아홉 개의 전국적 공공 주택 프로젝트들에서는 이제 임차인들이 운영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들에는 약물들과 범죄가 극적으로 줄어든 것도 포함됩니다. 
● 네 개의 주요 산업들에서,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소유한 기업들이 상위10위안에 들었읍니다.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소유한 기업들은 동종산업의 평균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 현재 7,000 개의 강력한, 풀뿌리 환경 단체들은, 산업 공해와 관련된 강경한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몇몇 경우에는 기업들에 책임을 묻는 새로운 메커니즘들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 170 개 이상의 전국판 신문들도 공동체 건강을 자신들의 임무와 다시 결부시키고 있으며, 종종 시민 저널리즘이라 불리는 시민 문제 해결을 위한 포럼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롭고, 더욱 효과적인 민주주의를 키워가기 위해서, 이들 이야기들과 이와 같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더욱 많아지도록, 더욱 쉬이 보여지도록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이 작동하는 것인지”에 관한, 그리고 공적 생활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필수적 역할에 관한 영향력 있는 교훈들로 널리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깊숙한 데까지 이르는 문화적 개조를 위한 두 번째 전략은 민주주의를 쓰는 혁신자들끼리 더욱 강력한 고리들을 형성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서로한테서 더욱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들이 종종 같은 영역 혹은 같은 도시에서조차도 다른 이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에 계속해서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교훈들을 나누는 데 더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민들이 - 우리가 “민주주의의 예술들”이라 부르는 - 민주주의를 쓰는 기량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을 광범위하게 늘리고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시민들은 공적 생활에 관여하는 것을 보람 있고 할만한 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협상, 적극적으로 듣기, 창조적 갈등과 같은 기량들에서 명상(冥想), 평가, 멘토링(助言)에 이르는 기량들의 훈련에 자원을 투자하는 조직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교육 기회들을 지원하며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작동하는 사회, 즉, 민주주의의 참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의 경험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조장하고 그 변화들을 북돋아야 합니다. 주류 매체들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어도, 희망찬 변화들은 봉사 활동 기관들, 학교, 사업장들에서, 매체들과 정부 조직에서조차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 아주 다양한 새롭고 자유로운 공적 관념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의 토대를 창조하는 이들은 바로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이야기한 관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는 우리 생존이 걸린 문제들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에 폭넓은 다수의 사람들을 개입시킬 수 있을 때 - 그리고 실효성을 갖게끔 개념들과 기량들을 신중하게 다듬어갈 때 - 성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시민들의 기대들을, 마찬가지로 “지도자들”의 기대들까지 변화시키며, 시민 문화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수도 없는 노력과 시도들이 점차 성공하고 있다는 것에는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재정 개혁 캠페인은, 성공할려면, 깊숙한 문화적 변화 가운데 새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정 개혁 캠페인은, 누군가 팔아먹고자 하는 또 하나의 도약대로 치부될 경우,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그 필요성들을 느끼고 있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 프란시스 무어 라페와 폴 마틴 두 부아 부부는 한 팀으로 버몬트의 브래틀보로에서 “살아 숨쉬는 민주주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사회 변화 조직들의 간부로서 수 십년의 직접 경험을 지닌 베스트셀러 저자들입니다. 두 사람의 가장 최신작으로 “미국의 태동하기: 우리 나라의 재구성, 우리 삶을 새롭게(The Quickening of America: Rebuilding Our Nation, Remaking Our Lives)” (Jossey-Bass, 1994)가 있습니다. 이 글은 사회 정책 계간지 1995년 가을호에 실린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역자 후기: 이 글은 근본적 구성론(RC) 포럼에서 구성론의 함의들에 대해 주고받는 가운데 언급되서 알게 되었으며, 저자 라페는 유명한 책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녹색 평론 2월호에 처음 소개된 것 같지만, 책이 번역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한 페이지는 아해의 노고가 들어갔습니다. 

 

최근 후기: 이 글은 2004년 후반 어느 날 번역된 것을 발견 수정한 것입니다.

 

원문은 http://sojo.net/magazine/1995/11/democracys-life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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