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조작적 스킴(operational scheme)

1.

그의 인지이론은 두 종류의 ‘바이어빌러티(viability)’를 수반하며, 따라서 쌍층적 도구주의이다. 감각운동 수준에서 바이어블한 행위 스킴들의 도구로서 역할은, 유기체들이 그들 경험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감각평형 그리고 생존과 같은 그들 목표들>을 성취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또 한편, 반성적 추상 수준에서 조작적 스킴들의 도구로서 역할은, 유기체들이 그들 경험의 현 지점에서 바이어블한 것들로 판명된 생각하기뿐만 아니라 행하기 경로들까지 보여주는 <구조들로 조성된 비교적 일관된 개념적 네트워크>를 획득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이러한 상위의 한층 포괄적인 추상 수준에서 개념들의 바이어빌러티를 가늠하는 기준은, 그것들의 실용적 가치가 아니라, <가능한 최대의 개념적 네트워크에 그 개념들이 무모순적으로 맞아들고 있는가> 여부다. 이러한 면은 구성주의가 과학의 관행을 침식한다는 잦은 불평을 잠재울 것이다.

 

 

2.

이와 달리, 특정 감각 소재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가 하는 일에 따라 결정되는 개념 구성의 그 어떤 결과도, 삐아제 용어로, ‘조작적’이다. ‘조작들’은, 그러므로, 언제나 마음의 조작들이며, 자체로, 관찰될 수 없다. 이들 심적 과정들에 대한 반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라면 무엇이든, ‘반성적 추상’이라 불린다. 이들 추상 형성의 소재(素材)는 생각하기 주체 스스로 펼쳐내고 있는, 이어 반성이 가해지는 조작들에 다름 아니다. 고로, 여기에 로크가 ‘관념들의 두 번째 원천’이라 불렀던 것과 명백한 유추(類推)가 있다 (2장을 보라)

 

 

3.

주어진 그 어떤 심적 조작의 사용도, 이제는, 원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맥락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고로, 특정 조작 방식이 다른 맥락들로 확장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horizontal décalage 수평 지체). 이것은, <아이가, 이를테면, 어떤 맥락에서는 ‘형식적 조작하기’를 시연했을 수도 있지만, 그밖에 모든 맥락에서는 여전히 그 이전 단계(時期)에 머물러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는 전제(當然視)는, 시기들을 특징짓는 조작들의 습득에는 상대적이지만 고정된 순서가 있다는 점입니다. (vertical décalage 수직 지체).

 

 

 

4.

이로써, 불가피하게, <행하기 주체의 알아차림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수반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가 긴급한 까닭은, 우선, 로크가 단어 ‘반성’을 인간(科)학들에 도입한 이후, 이 단어에는 반성하기를 하는 의식적 마음이 함축되는 경향(傾向)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삐아제가 ‘형상적’과 ‘조작적’을 구별한 많은 곳에서, 그 단어가 조작적인 것들에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화시키는 바들(傾向)이 있기 때문이다 (조작적인 것들에 대해, 로크와 삐아제 모두 ‘마음이 그 자신의 조작들 반성하기로 주워 모은 관념들’이라 기술했다). 이 문제는, 따라서, 삐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의식적 반성 깜냥이 제기될 때, 푸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반화 

<우리가 매번 사과 하나를 상상할 때마다 그것은 특정 색깔을 띠어야 한다고>고 버클리가 주장했을 때, 정말이지, 그는 완벽히 옳았다. 하지만, 이 주장은 우리가 (몇몇 측면들에서 다른, 그럼에도, 그 류(類)에는 포함되는 아이템(項)들을 우리가 사과로 알아보도록 하는) 일반 관념을 사과 경험들에서 추상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 대한 정당화는 아니었다. 그가 놓쳤던 것은, 그와 같은 일반 관념들은 ‘형상적’이 아닌 ‘조작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그림엽서 같은 이미지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작적 레씨피들이다. 

 

 

재연

형상적 의미들은, 자신들이 추상되었던 감각운동 경험의 그러한 류(類)의 재연을 불러내기에, 지체 없이 시각화될 수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이들 재연들은 자주 불완전하다. 이를테면, 우리 모두는 사지(四肢)로 기어가는 걸 자신들한테 시각화할 수 있지만, 팔, 다리의 움직이는 순서 확정을 위해서는, 많은 성인들의 경우, 그 활동을 반드시 실제로 이행해 보아야 한다는 점을, 삐아제는 입증해 보였다 (1974a, p.15). 

 

조작적 의미들은 감각운동 상황에서 ‘구동되었던’ 그와 같은 것만으로는 재연될 수 없다. 이를테면, 골퍼가 ‘스윙’를 상기(想起)하는 경우, 자기 손으로 느끼는 클럽의 감촉, 자기 팔 근육에서 오는 근운동감각 신호들, 그라운드에서 그의 자세, 그리고 여타 감각 소재들을 자신한테 재연하지 않고는, 상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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