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서 보며 본 것을 제자리에 두기

실험관찰적 또는 경험적 추상(empirical abstraction)

1.

‘형상적’은 감각 영역을 지시하며, 운동[運動: 운동은 관찰자적 관점에서는 ‘관찰 현상’으로, 행위 주체의 관점에서는 ‘동(動)의 운영(運營)’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다의성이 있다]으로 생성된 감각들(kinaesthesia: 筋運動感覺), 유기체의 (물질)대사로 발생된 감각들(proprioception: 自體發生感覺), 그리고 지각에서 특정 감각 데이터의 합성을 포함한다. ‘행하기’는 그러한 감각운동 수준에서 행위들을 가리키며, 감각 대상들과 물리적(몸) 운동을 수반하기에 관찰 가능하다. 특정 감각신호들(과/또는) 특정 운동신호들로 합성된 패턴을 얻는 그 어떤 추상도, 삐아제가 ‘실험관찰적(empirical)’이라 부른 것이다. 감각운동 신호들을 아이가 연계, 결합시켜 구성한 대상–개념은, 그러므로, ‘실험관찰적(經驗的) 추상’이 된다.

 

 

 

2.

조작적 영역이 일단 형상적 영역에서 구별되었다면, <대상 영속 개념은 실험관찰적 추상이 아닌 반성적 추상이다>는 점이 분명해지는 까닭은, 대상 영속 개념이 감각운동 소재에서가 아니라 개체 동일성이라는 조작적 개념 구성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3.

삐아제한테, 심적 조작들은 ‘추상’이거나 ‘논리적 변환’이다; 전자, 추상이 감각운동 소재에서 만들어지면 ‘실험관찰적(empirical)’이 되고, 주체 자신의 활동을 대상으로 하면 ‘반성적’이 된다;

 

 

4.

삐아제는 크게 두 종류로, ‘실험관찰적(empirical)’과 ‘반성적(reflective)’을 구별했고, 다시 후자를 세분했다. 그는 그 일차적 차이를 평이한 용어로 자주 설명했다. 이를테면,

 

실험관찰적 추상은 관찰 가능한 것들과 관련되며 반성적 추상은 정렬과 관련된다. (Piaget et al., 1977a, Vol. 2; p.319) 

 

그래서, 두 종류 추상들은 그 원천이 외생적인가 내생적인가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 (Piaget, 1974c, p.81) 

 

 

 

 

5.

‘구체적 존재들에서 취해진 관념은, 이로써, 같은 종류 모두에 대한 일반적 재현이 된다’(1690, Book II, Ch.X, par.9)라는 말로, 로크가 특징지었던 과정은, 삐아제 용어 ‘실험관찰적(經驗的) 추상’에 해당된다. 특정 경험의 일정 감각 속성들을 격리, 반복 가능한 조합들로 유지, 보유하는 것, 이를테면, 사과에 대한 추가된 예시물들을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격리(孤立)시키는 일은, 분명, 실험관찰적 추상이다. 하지만, 내가 앞서 제기했던 것처럼, 특정 스킴의 적합한 촉발자들로 아이템(項)들을 알아보도록(동화하도록) 할 수 있는 일정 개념을 조성했다는 것에서, 재연에서처럼 아이템들을 그와 같이 자발적으로 시각화하는 능력이 자동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6.

실험관찰적 추상 개념은, 내가 로크한테서 인용한 구절로 보인 것보다도, 삐아제의 경우 더 넓은 경험 범위를 포괄한다. 로크가 ‘구체적 존재’라 칭한 것들은, 삐아제한테는 다섯 감지(sense)들이 공급한 관념들이었다. 삐아제 조망에서, 보고 만지는 지각은 운동을 수반하기에, 에이전트 자신의 운동으로 야기된 내부감각(筋運動感覺)들은 ‘형상적’인 것들에 속하며, 고로, 그것들이, 그한테, 운동 패턴들의 형식에 해당되는 실험관찰적 추상들을 얻어내는 원자재(原料)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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