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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이전 학파들(The Pre-Socratics)

        소크라테스 이전 학파들

 

서양 철학 시초부터 무시될 수 없었던 한 무리의 이단자들이 있었다. 그들 논증은 논리로는 반박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회의론자’였고, 그 최초 학파는 기원전 4세기 말엽 피론이 조직했다. 그 가르침은 5백년이 지나서야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모아 주석을 달았다. 

 

    회의론자들이 인간 감지들[sense: 보고, 듣고, 맡고, 맛보는, 등등의 인간의 감각 깜냥들을 가리키며, 이 깜냥들의 산물들(데이타, 인상, 지각, 등등)을 이 단어 뒤에 연이어 붙여 표기한다. 또한 이를 감관(感官)으로 이해하거나 표기하는 경우, 어디선가, 어긋날 수 있음에 주의하라]들에 대해 신뢰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이는 무수한 사례를 수집했던 이유는, 그것들에 기초한 지각과 판단은 전후 맥락과 인간들의 태도에 영향을 받기에 실재하는 세상에 대한 참된 그림(像)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신뢰할 수 없음을 보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찬물에 담근 손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면 뜨겁다; 뜨거운 물에서 미지근한 물로 옮기면 차갑다; 따라서 물의 진짜 온도는 결정될 수 없다 – 우리의 판단은 우리의 경험 맥락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하는(real) 세상에 대한 참된(true) 지식에는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 신념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했던 사람은 피론보다 약 200년 앞서 살았던 크세노파네스였다:  

 

그 누구도 [창조주나 그 세상에 관한] 확실한 진리에 다다른 적도, 다다를 수도 없다; 무엇이 참인지 말하기에 충분히 성공했을지라도, 그 자신 그것이 그러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Xenophanes, Fragment 34)** 

 

** 나는 그리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학파들에 관해 인용된 번역들은 허먼 딜스(Hermann Diels: 1957)의 독일어 번역들과 W.K.C. 거트리(Guthrie)의 영어 번역들(1962, 1971)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의 골자는 여러 세기를 거치며 허다한 형식들로 불쑥불쑥 나타났다. 이러한 골자는 척하는 거짓 논증으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확실한 지식이 있을 수 있다>를 부정하는 경우, 그 부정, < ... 없다> 또한 확실한 것일 수 없다는 식의 논증이다. 이러한 논증이 사기(詐欺)인 건, 그 세상에 관한 확실한 지식의 영역과 논리학, 수학 영역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세노파네스가 2 + 2 = 4의 확실성 인정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으리라 보는 건, 세는 행위를 통제하는 규칙과 고정된 잇달은 수 단어들에 관해 동의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두 쌍의 아이템을 잇달아 셀 경우 ‘넷’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실성이 보여주는 것은, 고안되어 합의된 <수(數) 세는 체계>에 관한 것이지, 수학에 대해 창조주가 부리는 재간(才幹)이나 세는 주체와 독립된 것으로 여겨진 수의 세상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실, 크세노파네스의 통찰력에 깔린 추리에 수반되고 있는 것은 생각하기 논리지 구체적 경험은 아니다. 그 세상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장하려면, 지각과 착상들로 구성한 그림(像)이 모든 측면에서 진짜 있는 그대로 그 세상의 참된 재현(表象)임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수한 판박이라는 걸 확실시 하려면, 그 재현(表象)을 재현(表象)하고자 했던 것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능한 일이 아닌 건, 당신은 지각하고 구상(着想)하는 인간 방식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약 100년 후, 기원전 5세기 최초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는 이를 유명한 구절로 정식화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Protagoras in Guthrie, 1971, p.171)

 

    오늘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여하한 세계관, 세상에 대한 그 어떤 사람의 시각도 (동물, 기계, 신의 시각이 아닌) 필히 인간의 시각(見解)이다. 그 어떤 신비한 직접적 계시 형식을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지식이라 부르는 것 - 아이디어나 개념, 이들을 연결하는 관계, 당신 자신과 세상에 대한 당신 이미지 - 모두 인간의 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만들어냈던 방식이 당신 것이며, 그것이 맘에 들든 안 들든, 당신은 그러한 인간 방식들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서양 세계의 위대한 철학자 모두 이러한 논증이 논리적으로 반박 불가능함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우회하는 방식을 찾으려 분투했다. 형이상학의 가면을 쓰고 이런 저런 형식으로, 공공연히 또는 은밀히, 신비주의나 종교적 계시로 도망쳤다. 

 

    플라톤은 지식 개념이 갖는 역설적 특성을 분명 알아차렸고 이를 네 부분으로 나뉜 일련의 은유로 제거코자 했다(The Republic, 509d–517b). 처음 두 분절은 감지(sense)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지각에서 얻어지는 사물의 형상들, 상상과 추측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자 이미지들. 이것들은 진짜, 말인즉, 실재하는 사물들이 아니기에, 그는 이를 그 유명한 동굴의 우화로 설명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확실한 지식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억견’[doxa: 통념에 따라 짐작이나 상상으로 하는 생각]만 존재한다. 세 번째 절은, 수학과 같은 사유의 산출물에 대한 이해(episteme:정당화 가능한 참된 믿음)를 주장하고 있다. 넷째 절에, 영구 불멸의 관념들, 미(美), 정의(正義), 그리고 선(善)을 언급하며, 그것들은 신의 우주 창조 이래 인간 개개인의 유산이 된 것들로, 바로 여기서 참된 지혜가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일련의 은유가 암시하는 것은, 누구든 인간 이성의 권능으로 동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신성한 진리(Truth)를 보는 데 이를 수 있다는 바와 같은, 발달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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