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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전제(The Biological Premise)

        생물학적 전제

 

삐아제는 의심할 바 없이 20세기 인지에 대한 구성론적 접근에 있어 선구자다.** 이러한 접근은 그가 1930년대 발전시킬 때 비인습적(非因習的)이었으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수용된 시각(見解)과도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또한 그의 접근이 거북하고 불편한 까닭은, 수천 년 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확고한 기초 개념들에 대한 단호한 변화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초 개념들 가운데는 ‘실재’와 ‘진리’가 있고, ‘지식은 무엇인가’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얻는가’에 대한 생각이 있다.

 

** 발트윈(James Mark Baldwin)이 삐아제의 접근을 먼저 생각했다는 제기가 있었으나, 보네체(Vonèche)(1982)는 그 연결 관계들이 빈약하며 두 저자는 그들 아이디어의 대부분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켰음을 보였다.

 

    삐아제가 서양철학 전통과 그와 같이 딱 잘라 철저하게 단절한 이유와 방식을 설명하려면, 가장 먼저 그의 지적 경력의 출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나의 해석에 깔린 전제는, 삐아제의 목표는 인간 인지와 그 발달에 대한 가능한 일관된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처음부터 그는 가려는 방향에 대한 선명한 아이디어(觀念)를 갖고 있었지만, 전개될 모든 단계들을 결코 앞서 볼 수는 없었다. 그의 모델은 직선으로 곧장 크지 않고, 상당수 가지들은 시들더라도 본줄기는 계속 커가는 나무처럼, 그 중심 관념들은 발전을 거듭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후기 저작의 진술과 노골적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는 초기 저작의 진술은 무시할 것이다.**  

 

** 최고의 시도에 속하는 리타 뷰익(Rita Vuyk)의 두 권으로 된 Overview and Critique of Piaget’s Genetic Epistemology(1981)의 서문에서, 그녀의 언급을 조건 없이 채택한다: ‘그의 책들 내 복사본들에 불가해한, 넌센스인, 모순적인... 것이라 주석을 단 모든 구절은 Overview에서 삭제했다’(p.ix) 

 

 

    삐아제는, 자전적 구절들 가운데 하나에서, ‘지식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에 내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음을 말하고 있다(Piaget, 1952b, p.240). 이러한 진술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지를, 사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그리고 역사성 없는 이성(理性)의 결과로 여기기보다, 생물학적 기능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인식론에 대한 철학자들의 전통적 접근을 근저에서부터 붕괴시킨다. 가장 먼저, 있을지 모를 존재론적 세상에 대해 주어진 관심을 유기체의 경험 세계로 전환, 이동시킨다. 

 

    내 아는 한, 삐아제는 야콥 폰 윅스퀼의 작업과 여하한 접촉도 없었지만, 두 사상가의 아이디어들 상당수에는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독일 생물학자들이 Merkwelt라 칭하는 감각하기 세계와, Wirkwelt라 칭하는 행하기 세계(von Uexküll and Kiszat, 1993)는 삐아제의 개념, ‘감각운동 수준’에 포함된다. 두 저자 모두 칸트의 통찰력, <우리가 칭하는 지식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대다수는 필연적으로 알기 주체의 지각하기와 구상하기 방식들에 따라 결정된다>에 매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삐아제는 에센셜 삐아제(Gruber and Vonèche, 1977)의 그가 쓴 서문에 그의 과업 목표를 기술했다:   

 

생물학적 적응 메커니즘들에 대한 탐색, 한층 더 높은, 과학적 사고로서, 적응 형식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항상 나의 중심 목표였던 그 형식에 대한 인식론적 해석. (Piaget, in Gruber and Vonèche, 1977, p.xii) 

 

    지식 습득은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20세기로 바뀌던 시기, 제임스와 짐멜, 그리고 여타 사람들이 제기하였지만, 삐아제는 <인지적/개념적 영역에서 적응은 생물 유기체들의 생리적 적응과는 같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보았다. 인지 수준에서, 삐아제가 알아차렸던 바, 적응은 생사를 직접 가르는 게 아닌 개념적 평형의 문제였다. 따라서, 중요한 건, 그가 ‘한층 더 높은 적응 형식’을 말할 때 찾는 것은 심적 메커니즘이지 통상 이 용어로 가리키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아님을 명심하는 것이다. 

 

    삐아제가 아이들한테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인지 메커니즘에 대한 탐구 때문이었다. 유아와 성장기 아이들의 그들 환경과 상호작용을 관찰함으로써, 그가 인지 과정의 명백한 현상들을 분리시킨 건, 인지와 인지의 개체발생에 대한 일반화 가능한 모델에 이르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기획으로 산출된 것은 모두, 전통적 철학자들의 관점에서는, ‘발생적 오류’를 범한 것이 되는 까닭은, 그들한테, 지식이란 밑도 끝도 없이 영원한, 불변하는 것이지 그 발생 역사를 통해서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대다수 철학자들은 삐아제가 말하고 썼던 그 어떤 것들이든 무시해도 정당하다고 느꼈다. 다른 한편, 심리학자와 일반 사람들은 그의 텍스트들이 아이들한테서 보이는 발달 현상들을 빈번히 언급했기에 그를 아동 심리학자로 결론지었다. 이러한 조망이 주어지자, 그들은 그의 아이디어들을 심리학 전통에 짜맞추고자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러한 종종 전적으로 무의식적인 노력들은 행해진 주된 이유는, 아마도, 그러한 문헌들에 만연한 엄청난 규모의 어긋난 해석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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