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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 메커니즘(A Learning Mechanism)

  
        배우기 메커니즘
 

잠시, <난방 시스템의 자동온도조절기가 자신의 경험 세계를 숙고하며 조직할 수 있도록 알아차림(意識)과 몇몇 인지적 기능들이 기적같이 깃들게 되었다>는 공상적 가정을 해보자. 이는 매우 단순한 세계일 것이다. 이 조절기는, 오직, 자신의 온도계에서 오는 기준 온도에 미달한 신호, 기준과 일치한 신호, 그리고 초과한 신호로만 지각적 구별을 행할 뿐이다. 그밖에 지각 데이터는 있을 수 없다. 자체발생감각 측면에서, 즉, 시스템 자신의 행위로 발생된 그 시스템의 근운동감각 피드백 측면에서, 데우기 활동은 식히기 활동과 차별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이 조절기가 자신의 경험 세상에서 알 수 있는 전부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찬 것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순간 데우거나 식히는 활동 가운데 하나를 택해 실행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지각 변화와 두 가지 활동 사이 연결들은 고정된 것이다. 이 연결들은, 고정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생명 유기체의 반사나 고정된 행위 패턴에 수반된 연결들과 유사하다. 자동온도 제어장치에서든 또는 유기체의 반사에서든, 그러한 연결들을 내보이는 개체로서 시스템은 그것들을 배울 필요가 없다. 그러한 연결들은, 장치(裝置)라면 디자인하는 기술자에 의해, 유기체(有機體)라면 변이와 선택 과정을 거치는 진화에 의해 배선(配線)된다.

 

    그렇지만, 보다 복잡한 시스템에서 그러한 연결들은 배우기의 결과일 수 있다. 1940년대 초기 사이버네틱스 사고의 선각자, 케네스 크래익은 배우기의 기본 형식이 어떻게 기계화될 수 있는지 제안했다 (Cra–ik, 1966). 필요한 것은 두 개다: 우선, 기억 비슷한 것으로, 일련의 신호들이 경험 흐름 이후 어떤 점에서 읽히기 위해 기록될 장소; 다음, 지나간 신호를 현재 신호 또는 (준거로서) 목표–신호와 비교할 수 있는 능력. 일단 그러한 이원적 깜냥을 갖추면, 귀납적(歸納的) 배우기의 선행 조건들이 충족된다. 이러한 초기 수준에서, 귀납은 데이비드 흄이 250년 전에 기술한 것만큼이나 간단하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시스템의 과거 경험에서 성공으로 기록되었던 행위들을 그 시스템이 반복하도록 이끄는 규칙(規則) 혹은 기질(氣質)뿐이다. 말하자면, 요동이 발생하면 그 시스템은 과거 그러한 특정 종류의 요동을 줄이거나 제거했던 활동을 선택할 것이다. 숨어있든 드러나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성공으로 판명된 연결은 앞으로도 성공할 것이다’라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흄이 말했던 대로:
 
자연의 추세(趨勢)가 바뀔 수도 있다고, 그래서, 과거는 미래를 위한 여하한 규칙도 될 수 없다고 의심하는 경우, 모든 경험은 쓸모없는 것이 되며, 그 어떤 추론이나 결론도 생겨날 수가 없다. (Hume, 1742, Essay II, part 2)
 
    상상의 배우기–온도조절장치에 우리가 가설(假說)로 부여한 인지기능들의 복잡한 정도와는 무관하게, 이 장치는 오직 자신의 활동과 이어 경험된 감각신호 변화 사이 특정 연결들에 관한 규칙들을 확립하는 것 이상은 결단코 할 수 없다. 이 장치는 자신이 자신의 데우기 기관을 가동시킴으로써 자신의 주변(環境) 온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없다. 이 장치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데우기 활동으로는 찬 감각이 줄어들고 식히기 활동으로는 뜨거운 감각이 줄어든다는 것뿐이다. 이 장치는 자기 지각들에 대한 제어를 배울 것이다. 외부와 특정 연결이 있다는 것은 오로지 관찰자만이 확정할 수 있는 것은, 그 ‘유기체’와 그 ‘유기체 환경’ 모두 관찰자 관점에서 실제 경험을 분절(分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유기체의 조망에서 만들어진 그 어떤 연결, 발견되는 그 어떤 규칙도, 그것들은 언제나 유기체 자신 내부 신호들에 대한 연결이자 규칙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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