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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실패와 성취(A Failure and Achievement of Descartes)

        데카르트의 실패와 성취

 

데카르트가 확실한 지식 탐색에 대한 비타협적 추구를 결심한 건, 당대인들 상당수가 재발견된 피론학파의 가르침을 종교적 신념에 적용하자, 격심한 불안을 느껴서다. 모든 관념 의심하기로, 그가 바란 건, 의심 불가능한 관념들의 분리였다. 발견한 건 단 하나: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의심스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였다. 그러나 이러한 확실성을 써서 의심 불가능한 다른 관념들을 구성하려 했을 때 실패한 채, 신덕송(信德頌)에 의지해야 했다. 그의 고백: ‘신은 사기꾼이 아니시기에, 신이 우리한테 주신 지적 재능에 오류란 있을 수 없다’ (Popkin, 1979, p.177). 

 

    데카르트의 의심 방법은 회의론을 무너뜨리는 커녕 그 가치를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보여준 여타 많은 것들을 성취했다. 그 중 하나는, 기하학(geometry)을 대수학(algebra)으로 변환하는 독창적 방식, 해석 기하학(analytical geometry)의 발명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그가 이것을 어떻게 고안했는지 들었다. 

 

    이 이야기는 지어낸 거지만 구성론자한테는 직접적 호소력을 지닌 것이다. 23살 되던 해 그는 군에 입대했고, 남부 독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전투가 없던 때라 그는 농가 한 채를 숙사로 할당받았다. 겨울이어서 대부분 시간을 실내에서 더구나, 그가 쓴 바, ‘난로 안에서’ 보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지방 농가를 아는 이라면 신비할 게 없다. 대체로 거실 한쪽 모퉁이에 커다란 타일들을 붙인 난로가 놓이고, 그 주위를 둘러싼 나무 구조물 위에 널판이 올려지고, 그 널판은 기지개를 펼 만큼 넓고 천장에서 2피트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인데, 그건 파리들도 압니다. 파리들은 천장의 그 부분을 거처로 씁니다. 

 

    이러한 널판에 누워, 데카르트는 천장으로 눈을 돌려 파리들이 노니는 걸 보았다. 수학적 성벽(性癖)이 일자, 그는 파리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묘사할 방식을 자신한테 물었고, 천재의 번뜩임이 발했다. 천장과 벽체들이 만나 형성된 선은 2개고, 그 2개의 선은 방구석 끝에서 직각으로 만났다. 한 마리 파리의 위치는, 파리를 양쪽 선에 사영(射影)시키기와 구석 끝에서 사영된 각 지점까지 거리들 측정하기로 묘사될 수 있었다. 만약 파리가 곧게 움직였고 그 움직임의 양 끝점에 똑같은 절차를 적용한다면, 파리의 행로를 각각의 축들에 투사된 첫째, 둘째 점들의 거리들로 표현할 수 있다. 

 

    분명 이와 같은 경험으로, 데카르트는, 확실한 지식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성과 그 가장 완벽한 구현체인 수학에서 비롯되어야 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구성론자한테, 이 이야기는, 참이든 아니든, 수학적 관념들이 감각운동 경험에서 추상될 수 있다는 원리에 대한 멋진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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