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주석

 

   단순화 가설은, 정당화되기 전에 쓰인, 최초의 공공연한(overt) 협약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조짐은 앞 장의 주문(注文), “표현으로 지시된 상태는 그 표현 값이 되도록 한다”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표현이 하나의 상태를 지시하는 것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경우에만 그 표현에 값을 허용하는 주문입니다. 주문과 협약, 양자의 사용은 결국 재현에 대한 정리들로 정당화됩니다. 그밖에 지체 혹 유예된 정당화의 경우들은 차후 발견될 것입니다: 그 두드러진 예는 정리 16입니다.    

 

   왜 그와 같은 협약이 주어질 때 바로 그때 정당화하지 않는가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대다수 경우, (유효할지라도) 정당화는 우리가 정당화를 요구하는 해당 원리의 사용(use)에 최초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깊숙한 곳에 있는 원리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기에 앞서 우리한테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잘 아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체된 정당화 관행이 다른 곳에서도 유효하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증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유용한(useful) 정리들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입니다. ‘유용한’으로 뜻한 바가 반드시 수학 이외의 실용적 응용과 관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리는 수학적으로, 예를 들어 또 다른 정리를 정당화하는 데에, 유용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가장 ‘쓸모 없는’ 정리들 가운데 하나는 Goldbach의 추측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들은 두 개의 솟수의 합으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D J Spencer Brown이 사적 편지에 꺼냈던 말로, 그러한 정리들의 명백한 무용성(uselessness)은, 바로 그와 같은 정리들이 증명될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유효한 증명이 주어질지라도 아직은 그와 같은 증명이 기초하고 있는 토대에 그 누구도 익숙하지 않기에 그것을 그와 같이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나는 이에 관해서 말할 기회를 8장과 11장의 주석들에서 다시 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