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의 법칙들: 1972년 최초 미국판 서문

1972년, 최초의 미국판 서문




대학의 규범적 논리 문제들, 우리가 이 텍스트에서 공표한 쉬운 연산을 쓸 경우 더 이상 번거롭지 않을 그러한 논리 문제들을 제쳐두면, 수학적 각도에서, 그 연산을 써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논리 대수학(algebra of logic)에서 복소값들을 쓰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값들은 복소수 a + b√-1에서, 통상 대수학에서, 아날로그들입니다. 우리 형제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전, 그것들에 필적하는 불 대수(Boolean algebra) 대응물들을 응용 공학에 여러 해 동안 사용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들은 그 어떤 것으로서 완벽히 잘 작동하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쓰는 것과 관련해서 우리한테 죄의식이 들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음수의 제곱근’을 쓰는 초보 수학자들이 이와 관련해서 자신들한테 수준급의 학적 의미를 주는 그 어떤 그럴 듯한 방식도 알지 못하기에, 죄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떠받칠만한 완벽하게 멋진 이론이, 우리가 그것을 생각해낼 수만 있다면, 있음을 단연코 확신했습니다.

그 입장을 간략히 말하겠습니다. 통상 대수학에서, 복소값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없다면 더 높은 수준의 테크닉들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불 대수학에서는(아울러, 그렇기에, 이를테면, 우리의 모든 추론 과정들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Whitehead와 Russell은 그리 하려고 일부러 특수 규칙 하나를 도입했으며, 그것을 유형 이론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판명된 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더 높은 수준의 테크닉들은, 불가능한 것들은 아닐지라도, 아직은 단연코 실존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추론 과정들에서, 우리는 Aristotle 시대에 했던 방식으로 그것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시인 Blake는, 그가 1788년 “우리가 앞서 알고 있었던 이성, 혹은 모든 비율(들)은, 우리가 더 알게 된 후에는, 앞에 것(들)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썼을 때 어떤 통찰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Russel의 유형이론과 관계를 상기하자면, 내가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증명을 갖고 1967년 그를 만났을 때는 상당히 떨렸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기뻐했습니다. 그 이론은, 정말이지 이론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한, 그와 Whitehead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전적으로 임의적인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살아서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보게 되었다며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간단히 하자면, 그 해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유형이론으로 폐기된 자기-지시적 역설들은, 보통 방정식 이론에서 상당히 허용될 수 있다고 간주되는, 유사 자기-지시적 역설들보다 나쁜 것들이 아니다>라는 점이 전부입니다.

논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그러한 역설은, 진술, ‘이 진술은 거짓이다’에 있습니다.

어떤 진술이 세 범주, 참, 거짓, 또는 의미없음 가운데 하나에 해당된다는, 그리고 참이 아닌 진술은 거짓일 수밖에 없고 거짓이 아닌 진술은 참일 수밖에 없다는 바를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고 합시다. 지금 고려하고 있는 진술이 의미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몇몇 철학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반박하기 쉽습니다), 이 진술은 참 또는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진술이 참이라면, 말한 바 그대로 이 진술은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진술이 거짓이라면, 이 진술은 바로 그 바를 말하고 있기에, 이 진술은 참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방정식 이론에도 마찬가지로 심술궃은 역설이 있음을 이제껏 주목하지 않았던 까닭은, 그것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피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도록 합시다.

위의 것들과 유추관계에 있는 전제들을 만들겠습니다. 어떤 수가 있고, 그 수는 양수, 음수, 혹은 0 가운데 하나라고 전제합니다. 더 나아가, 그 수가 양이 아니며 0도 아니라면 음수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음이 아니며 0도 아니라면 양수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합니다. 이제, 방정식,

x2 + 1 = 0

을 고려합시다. 이항하면,

x2 = –1

인데, 이를 양변을 x로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x = –1/ x

이는 (논리학에서 유사 진술과 비슷하게) 자기-지시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구하려는 x2 제곱근 x는 그걸 구하는 식(式)에 다시 되돌려져 있습니다.

단순한 검사로 x는 단일체 형식(form of unity)일 수밖에 없음을, 혹은 그 방정식은 수치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1과 –1이라는 단 두 개의 단일체 형식들만을 가정했기에, 우리는 이제 그 하나하나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집합 x가 +1인 경우, 즉, x = +1 일때,

+1 = –1/+1 = –1

로 됩니다. 이는 분명 역설입니다. 이번에는, x = +1 일때,

–1 = –1/–1 = +1

역시, 마찬가지로 역설입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경우 역설은, 허수(imagery)라 불리는 수의 네번째 부류를 도입함으로써 위 방정식의 근들을 ±i 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여기서 ±i는 –1의 제곱근을 조성하는 새로운 종류의 단일체들입니다.

우리가 11장에서 한 일은 그 개념을 부울 대수로까지 연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효한 논증은 진술에 대해 세 가지 부류가 아니라 네 가지 부류(참, 거짓, 의미 없음, 상상적(imagery))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것들은, 논리학, 철학, 수학, 그리고 물리학에서조차 심오한 것들입니다.

일단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부울 허수값들과 관련해 매혹적인 것은, 그것들이 물질과 시간 개념들을 명확히 밝히는 빛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왜 자신이 하는 방식을 드러내 보이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것은, 내 짐작으로, 우리 모두의 천성입니다. 이를테면, 왜 우주는 보다 대칭적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자, 만약 당신이 이 텍스트에서 우주가 자체로 전개 발달하고 있다는 바를 논증하는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들을만큼 관대하다면, 당신은, 내 생각에, 우리가 아는 한 대칭적 방식으로 시작한다할지라도, 계속 진행할 경우, 그것이, 자연히 자발적으로, 대칭성을 점점 줄여가는 바를, 그 방식을 볼 것입니다.


G SPENCER-BROWN

Cambridge, Egland
Maundy Thursday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