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와 인터뷰

 

Constructing Communication

커뮤니케이션 구성하기

 

번역: 살클리

 

Andrea Pitasi (AP): Today as of August 21st 2001, we are at professor Von Glasersfeld's place, and we are starting our interview about constructivism and communication studies. I'm very grateful to you, Professor Ernst von Glasersfeld, and I am delighted to be here. It's very kind of you to give me your time for this interview. Thank you very much. I would be interested in the most important theoretical foundations of constructivism and how, in your opinion, these foundations could be applied in communication studies.

Andrea Pitasi (AP): 오늘, 2001년 8월 21일, 폰 글라저스펠트가 일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구성주의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관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 교수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기 오니 기쁘네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구성론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토대들에 관심이 있으며, 이들 토대들이 커뮤니케이션 연구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지, 교수님 견해에 관심이 있습니다.

 

Ernst von Glasersfeld (EvG): Well...you know, that's a question that one can answer by writing a book or in one phrase. The on-phrase answer would be that "radical" constructivism does away with the traditional conception of communication. For your purposes, however, it might be better if I answer the question on a more personal level. How did I get into constructivism? And that was, in the first place because I was brought up with more than one language, and if you live in more than one language you very soon realize that there isn't one reality, but there are several different realities. This created my interest in epistemology long before I knew what the word epistemology meant.

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 (EvG): 음… 아시다시피, 그건 책을 한 권 써서 답을 하던지, 아니면 한 구절로 답할 수 있는 문제죠. 한 구절로 답하면, "근본적 또는 급진적" 구성론은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폐기처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질문하신 바에 맞추어, 보다 사적인 차원에서 질문에 답하는 것이 나을 듯 하네요. 난 어떻게 구성론에 입문하게 되었는가? 우선은, 내가 하나 이상의 언어로 양육된 때문인데, 하나 이상의 언어를 쓰는 곳에서 살면, 현실이나 실재는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개라는 걸 곧바로 깨닫지요. 이로 인해 인식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단어 인식론이 뜻했던 바를 내가 알기 오래 전의 일입니다.

 

The second reason, if you like, is that when I began to read epistemology I found it fascinating but also very unsatisfactory; the unsatisfactory part is that, from the very beginning of Western philosophy and epistemology, there were people who said that it is impossible to get to know an absolute reality and they had very good arguments, arguments that were never refuted by the philosophers. The philosophers tried to get round the arguments in one way or another, but they all ended up in metaphysics, which is fine but it's not a rational enterprise.

또 하나는, 인식론을 읽기 시작하면서 난 그것이 흥미진진한 것임을 알아차렸지만 또한 아주 불만스러웠지요. 불만스러웠던 건, 서양 철학과 인식론이 시작되는 바로 시점부터 절대적 실재를 아는 것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이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논증했고, 그 논증들에 철학자들은 전혀 반박을 못했습니다. 철학자들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방식으로 그 논증들을 모면하려고 했지만, 모두 결국 형이상학으로 결말을 짓고 말았어요. 형이상학은 세련된 것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기획은 아니죠.       

 

They could not handle the doubt that was launched by the Sceptics beginning with Pyrrho and others.

피론과 그밖에 이들로 시작되어 회의론자들이 띄어올렸던 의혹을 그들 철학자들은 다룰 수 없었어요.

 

So I kept on reading. And I was lucky. I spent some years in Ireland and through a peculiar connection I became interested in Gian Battista Vico. Joyce's "Finnegans Wake" is based on Vico's philosophy. I was (and am) a great admirer of Joyce and I thought if he can base his last book on Vico, I had to read Vico.

그래서 계속해서 읽었지요. 그리고 행운이 찾아왔어요. 아일랜드에서 몇 년을 보내는 사이 특별한 인연으로 잠밧티스타 비꼬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조이스의 "피네건스 웨이크"는 그 바탕을 비꼬 철학에 두고 있었어요. 나는 조이스에 대해 엄청 감탄했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그가 비꼬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마지막 책을 썼다면 난 비꼬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And I was lucky because in the library in Dublin there was an old edition of Vico's "Scienza Nuova" in Italian, which I don't think anyone had ever read. But I could read it, and so I got into Vico.

그리고 더블린 도서관에 비꼬의 "Scienza Nuova(새로운 과학)"가 오래되었지만 이태리어 판으로 있었다는 것은 나한텐 행운이었어요. 그 누구도 그 전에는 읽지 않았던 것 같았어요. 그러나 난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비꼬한테 이를 수 있었어요.

 

At the same time I had two friends who were interested in philosophy and we talked about Berkeley, George Berkeley, the Irish philosopher. Vico and Berkeley are two philosophers who are, I think, the most likely starting points of constructivism. And then you have Kant who was very much a constructivist. He covered, I would say, about 80% of the ground of constructivism. But, as Schopenhauer later noticed, he was not quite consistent about it. He also was a careful man and realized that his was an unpopular philosophy. Perhaps that was one reason not to be too explicit about it.

아울러 그때 철학에 관심을 둔 두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우리는 버클리, 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비꼬와 버클리는, 내 생각으로, 구성론과 관련해서 가장 그럴싸한 출발점들일 수 있는 철학자들이지요. 그리고 이어 아주 대단한 구성론자인 칸트를 알게 되었지요. 그는 구성론의 바탕과 관련해서 약 80% 정도 다루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가 후에 지적했던 바와 같이, 칸트한테는 구성론에 관해 일관되지 않은 것이 꽤 있습니다. 칸트 또한 조심스런 사람이어서 그의 철학이 인기없는 철학임을 알아차리고 있었어요. 아마도 그것이 구성론에 관해 너무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Those are to me the main sources of constructivism.

나한테는 이러한 것들이 구성론을 조성하는 주요 출처들입니다.

 

AP: I see and I completely agree also with your interpretation of these theoretical roots and it is sad to find out that one of the greatest philosophers of all times had to be careful and to protect himself from the Zeitgeist, a paradox for a pre-constructivist.

AP: 이들 이론적 뿌리/바탕들에 대해 저는 교수님의 해석을 이해하며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 시대정신으로부터, 구성론 이전 논자한테나 어울리는 역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진상을 알고나니, 슬픔이 밀려오네요.

 

EvG: And then comes Piaget who, after all, introduced the term constructivism in the last century (20th century, ndr) and became the constructivist par excellence.

EvG: 그리고 이어 삐아제를 알았지요. 그는 용어 구성론을 결국 이 마지막(20) 세기에 도입한 사람이자 아주 탁월한 구성론자가 되었지요.

 

AP: Perfect, thank you very much. Well, before you told me about your best way, I mean the personal way to explain the way you approach constructivism and I already know that you are interested in Vico as a person who more or less created the constructivism before constructivism. And you also quoted the "Antiquissima", another work in your book, a work by Vico.

AP: 완벽하네요. 고맙습니다. 음… 교수님 이렇게 말씀하시기 전, 교수님이 구성론에 접근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사적 방식이 교수님 자신의 최선의 방식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구성론 이전에 거의 근접한 구성론을 창조했던 한 사람으로서 비꼬한테 관심을 두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교수님 책에서 비꼬의 저작, "Antiquissima(고대 이태리인의 지혜)"를 또 하나의 저작으로 인용하셨지요.    

 

EvG: Yes, yes.

EvG: 맞아요. 맞습니다.

 

AP: As you know Vico is no longer a famous philosopher in Italy, unfortunately...

AP: 아시다시피, 비꼬는 불행히도 이태리에서는 더 이상 유명한 철학자가 아닙니다.

 

EvG: Yes, a misfortune, indeed!

EvG: 그렇죠. 정말 불행한 일이죠.

 

AP: But, you know, I have also some personal reasons to be interested in Vico because Vico is very much studied and still considered in the Suor Orsola University of Naples where I work so, you know, he's one of the pillars of local philosophy.

AP: 그러나, 아시는 거지만, 저 또한 비꼬에 흥미를 갖게 된 몇몇 개인적 이유들이 있지요.제가 일한, 아시다시피, 나폴리의 Suor Orsola 대학에서는, 그 고장 철학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인 비꼬를 아주 많이 연구하고 있으며 변함없는 관심 대상이지요.

 

EvG: Well, there is something that may amuse you. When I retired from the department of psychology at the University of Georgia I had been the principal investigator of quite a number of research projects and I thought I would like to start a research project of my own now. I wrote a proposal which I sent to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and several other agencies and the proposal was to go to Naples and to find out what happened when George Berkeley was in Naples for three months and met some of the people who knew Vico and must have met Vico too. I wanted to go there to find out what happened between Berkeley and Vico. Unfortunately I never got money to do that.

EvG: 음… 당신을 즐겁게 할 거리가 있어요. 내가 그루지아 대학 심리학과에서 은퇴할 때, 상당수의 연구 프로젝트들의 책임 연구원이었는데, 이제는 내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안서를 써서 National Science Foundation(국립과학재단)과 그밖에 몇몇 에이젼시들에 보냈는데, 그 제안이란 나폴리에 가서 당시 조지 버클리가 나폴리에 3개월 동안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을 알아보는 것이었어요. 당시 그는 비꼬를 아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때 비꼬 또한 분명 만났을 거예요. 나는 거기 가서 버클리와 비꼬 사이에 벌어졌던 일을 알아보고 싶었어요. 불행히도 그 일을 할 돈을 얻지 못했지요.   

 

I have since then corresponded with a number of people who might have known about such a meeting and they say they don't believe that there is any record of it anywhere. I find this unbelievable. Vico published his "de Antiquissima" in 1710, Berkeley published his first main work in 1710, and about five years later he spent at least three months in Naples. He talked to Doria and to other people who were well acquainted with Vico. It's not conceivable that they did not meet and talked to each other. There are so many parallelisms in their ideas. They're not the same, but there are parallel...

그때 이후로 그러한 만남에 대해 알고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서신을 교환했고 그들은 그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이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믿을 수 없는 바라 알아차렸습니다. 비꼬는 1710년에 자신의 "de Antiquissima"를 출간했는데, 버클리는 1710년 자신의 최초 주요 저작을 출간하고 5년 후 나폴리에서 최소 3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비꼬를 잘 알고 있었던 도리아와 그밖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들 아이디어들에는 같은 방향을 취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거든요. 그 아이디어들은 같지 않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거든요.  

 

AP: I think it would be a very intriguing connection to be investigated, absolutely important.

AP: 거기에는 연구될, 절대적으로 중요한, 아주 흥미진진한 연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And how would you consider the evolution of constructivism, its history from Vico...you quoted some authors, you quoted Vico, you quoted Berkeley, you quoted different authors until Piaget, no?

교수님께서는 구성론의 진화, 비꼬로부터 이어지는 그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몇몇 저자들을 인용했고, 비꼬를 인용했고, 버클리를 인용했고, 삐아제까지 다른 여러 저자들을 인용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EvG: Yes, well, there are others that you could mention, but before Piaget there is none who used the word "construction" or "constructivism" as a philosophical term.

EvG: 맞습니다. 음… 당신이 거론할 수 있었던 그밖에 저자들도 있지요. 그러나 삐아제 이전에 단어 '구성' 또는 '구성론'을 철학적 용어로 썼던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And before Piaget there isn't anyone who put the idea of the individual construction of knowledge together with Darwin's idea of adaptation. That is what Piaget has done and in doing it he created a relationship between knowledge and reality that had never been heard of. I think that it probably is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constructivism. It has to be repeated, and repeated, and repeated because people will not take it in easily.

그리고 삐아제 이전에는 그 어떤 이도 개체의 지식 구성에 대한 관념을 다윈의 적응 관념과 함께 고려하지는 못했죠. 그것이 바로 삐아제가 했던 일이고 그 일을 함으로써 그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던 지식과 실재/현실 사이 관련성을 창조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구성론의 가장 중요한 측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에 나는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The relation between knowledge and reality is no longer a representational relation, it's not the picture of reality. but it's a relation of fitting into the possibilities of reality. This means that you don't know what reality is like, but you begin to learn what you can do in that reality and that's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constructivism.

지식과 실재/현실 사이 관계는 더 이상 재현으로 맺어지는 관계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실재에 대한 그림/상이 아니죠. 그러나 그것은 실재/현실의 있을 수 있는 것들에 맞아들어가는 관계입니다. 이는, 실재/현실이란 그 무엇과 같은 것임을 당신이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은 그 실재/현실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구성론의 가장 중요한 측면입니다.  

 

AP: Yes but it is quite scary for people who normally use common sense.

AP: 그렇지만, 그것은 상식을 관행적으로 쓰는 사람들한테는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EvG: It's very difficult!

EvG: 정말 어려운 일이죠!

 

AP: Yes, difficult to understand, but also at the same time I think scary for them because maybe the way they act is constructivist, but the way they describe what they do is more "realistic" or they think they are realistic, at least. People always say "reality is" when they should say "my point of view is".

AP: 그렇습니다. 상식을 관행적으로 쓰는 이들한테는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또한 동시에, 그들이 행하는 방식은 어찌 보면 구성론적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을 기술하는 방식은 보다 '실재하는 것들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또는 그들 자신들은, 어찌됐든 최소한, 실재론자라 생각하기에, 구성론은 그들한테는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 관점이 있어" 하고 말해야 할 때 그들은 항상 '실재/현실는 있다'고 말하죠.

 

EvG: Certainly.

EvG: 정말 맞는 말이예요.

 

AP: So they have their own categories, they have their own brain frames, but at the same time they would never say: "these are my brain frames", they would say: "this is reality".

AP: 그들이 자신들의 범주들을 가지고 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두뇌 프레임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것은 실재/현실입니다" 하고 말하는 동시에 "이것들은 내 두뇌 프레임들입니다"라고는 결코 말하지 못합니다.  

 

And what about common sense? The difference, the gaps between common sense and the constructivist approach to knowledge. This is the other part of the initial question: how would you consider constructivism to understand how media and common sense interact, if they interact?

그러면, 상식과 관련해서… 지식에 대한 구성론의 접근과 상식 사이 차이, 격차들은 어떻습니까? 이는 최초 질문의 또 다른 부분입니다: 매체들과 상식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교수님은 구성론을 어떤 식으로 참작하십니까?

 

EvG: Well, when you say interact, I think of what happens with media and with the people who use media and are influenced by media. It doesn't break the constructivist rules, it follows pathways that are perfectly compatible with constructivism.

EvG: 음… 당신이 상호작용을 말할 때 드는 생각은, 매체들에 그리고 매체들을 쓰는 사람들한테 벌어지는 그리고 매체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한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것들은 구성론의 규칙들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구성론과 완벽히 양립가능한 경로들을 따릅니다.   

 

The question is at what point does epistemology become important, because it's on the level of epistemology that constructivism makes the difference. I have often said that a carpenter or even an engineer doesn't have to bother about epistemology, they learn their technology, they learn their techniques and they're all constructive, they don't have to worry about reality in any philosophical sense, the main thing is that what they do stands up, that it functions, that it fits into the world in which it is built. There's no difficulty there. It's in areas like psychology or education, where the question arises what the relation should be between our knowledge and the world in which we're living. There epistemology becomes important and then constructivism makes the difference.

인식론이 어떤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되는가 하는 의문은, 구성론으로 차이가 만들어진 인식론 수준에서 적절한 질문이 됩니다. 내가 자주 하는 말로, 목수 혹은 엔지니어조차도 인식론으로 골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테크놀로지를 배우면 됩니다; 그들이 배우는 기술들은 모두 구성론적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철학적 의미를 지닌 실재 때문에 괴로워할 이유는 전혀 없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유효하다는 <즉, 내구력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들은 기능하고 있다는 것, 그것들은 그것들이 구성되어 확립된 세상에 맞아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거기에는 어떤 곤란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적절한 질문으로, 우리 지식과 우리 사는 세상 사이는 어떤 관계일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는 지점은, 심리학 또는 교육과 같은 분야들입니다. 그 곳들에서 인식론은 중요해지며 그렇기에 구성론은 차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AP: On the epistemological level I think that constructivism would be crucial for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and I would like to know if you agree or not. Because of course people who work in the media may be an anchorman or movie directors and can easily ignore epistemology because...

AP: 인식론 수준에서, 내 생각으로, 구성론은 매체들과 커뮤니케이션 연구들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에 동의하시는 지 아닌 지 알고 싶습니다. 물론, 매체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앵커들 또는 영화감독들일 수도 있기에, 그리고 그들은 인식론을 쉽게 무시하기에…

 

EvG: Not only that. You see, I think, my difficulty with talking about media is this: does it involve only the technical part of spreading signals, if you will, or does it include the people who have a purpose in spreading the signals?

EvG: 그것만은 아니죠. 아시다시피, 매체들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내가 느끼는 곤란이 있어요: 원할 경우, 거기에 시그널 살포하기라는 기술적 부분만을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시그널(신호) 살포 목적을 지닌 사람들까지 포함할 것인가?

 

AP: In the way I'm using media, I mean the second.

AP: 제가 매체들을 쓰는 방식에서는 두 번째 뜻입니다.

 

EvG: Exactly, so the anchorman is someone who has a view of the world and who wants to propagate that view of the world, but he must never talk about constructivism and epistemology.

EvG: 그렇지요. 그렇게 앵커란 세계관을 가진, 그 세계관을 선전하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구성론과 인식론에 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전혀 없지요.  

 

AP: Sure.

AP: 물론이지요.

 

EvG: Because with that he would lose ground. So he has to pretend that he knows what the world is like and he's going to tell you, and you'd better believe it.

EvG: 그 이야길 하면 밀리겠기에 <말인즉, 근거를 잃어버리겠기에> 그렇죠. 그래서 그는 세상이란 뭐 비슷한 것임을 알고 있는 척해야 하지요. 그리고 당신한테 말하겠죠: '그걸 믿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AP: Exactly, and for example the use of surveys, the use of polls in politics, no? So these are all techniques very important in the media to describe the reality.

AP: 바로 그겁니다. 예를 들어, 여론 조사들의 쓰임새가 그렇고, 정치에서 투표의 쓰임새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들은 모두 매체들에서 실재/현실을 기술하는 데 쓰는 매우 중요한 테크닉들입니다.

 

EvG: To fix a reality.

EvG: 실재/현실을 고착시키기 위해서.

 

AP: Exactly.

AP: 맞습니다.

 

EvG: And to keep it fixed.

EvG: 아울러 고착된 실재/현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AP: According to a constructivist view: they sell the idea that they describe reality.

AP: 구성론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실재/현실을 기술하는 착상/구상을 팔고먹고 있지요.

 

EvG: Yes.

EvG:그렇죠.

 

AP: OK, so, in which way would constructivism be a crucial resource to understand how media fix reality?

AP:예, 그렇다면, 구성론은 매체들이 실재/현실를 어떻게 고착시키는 지를 이해하는 결정적 수단/방책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vG: Well, I don't think you can bring constructivism into that part of it. You can ask how does the anchorman construct the view that he wants to propagate and that's a construction, of course. But it does not get at the epistemological question of constructivism because the anchorman essentially doesn't care what reality is really like, he cares about propagating his view of a particular reality.

EvG: 글쎄요. 난 당신이 구성론을 그렇게 갖다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당신은 앵커가 선전하고 싶은, 당연 구성물로서, 견해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성론이 제기하는 인식론적 물음에 이를 수 없는 까닭은, 직업상 앵커 본연의 관심은 실재가 정말 무엇과 같은 것인 지 하는 의문이 아니라, 그의 특정 실재/현실에 대한 견해를 선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P: But...well...as a general question how much is he aware that he's propagating his view? Or if he believes he's describing reality?

AP:그러나… 음… 일반적 문제제기로서, 그가 자신의 견해를 선전하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요? 또는, 자신이 실재/현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믿고 있는 지 아닌 지를…  

 

EvG: I don't know. I have the feeling that they all believe that they are really describing reality, they've been honest you know, they're telling it how it is. And that's a disaster. That's why I tried to stay out of the media as much as I could.

EvG: 난 모릅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이 정말 실재/현실을 기술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듭니다. 당신도 알 듯이 그들은 이제껏 정직했습니다. 그들은 그 방식 그대로 실재/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름아닌 엄청난 재난이지요. 이것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는 한 매체들을 멀리하는 이유입니다.

 

AP: I see, so you suggest to me also to stay as out of the media as...

AP:알겠습니다. 그럼, 저한테도 가능한 매체들에서 벗어나 있으라고 제안하시는 건인 지…

 

EvG: No, I think you probably have a possibility of making it a little better, of sowing a little doubt here and there.

EvG: 그건 아닙니다. 내 생각하기에, 당신은 필시 그것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겁니다. 여기 저기 조그만 의혹의 씨앗들을 뿌리면서…  

 

AP: I see, and in terms of key authors of constructivism...people of my generation, you know I am in my thirties, studied your works, professor von Foerster's works, and professor Watzlawick's and so on. But in terms of constructivism applied to communication and media the most popular and most considered author was Niklas Luhmann: what do you think about his works and his constructivism?

AP: 알지요, 구성론의 주요 저자들의 견지에서 볼 때… 제가 삼십대인지 아시는 바, 제 세대 사람들은 교수님의 저작들, 폰 푀르스터 교수님의 저작들, 그리고 바츠러빅 교수님의 저작들, 그리고 그밖에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과 매체들에 적용된 구성론과 관련해서 가장 인기있고 가장 중시되는 저자는 니클라스 루만이었어요: 그의 저작과 그의 구성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vG: Well. I have great difficulties with Luhmann, I haven't studied him from the beginning, I have read a few things of Luhmann and I have difficulties understanding specifically what he means by communication. His communication becomes such a basic term in his philosophy that I'm not sure what he means by it. You see to me, as a radical constructivist, communication is, in a way, a misleading term, because it always suggests to people that when you're communicating something that something is in my head and I put it into some formal code and then you unravel the code and have that same thing in your head that I have.

EvG: 글쎄요. 나한테 루만은 굉장히 어려웠어요. 처음부터 그를 연구하지는 않았어요. 루만의 몇몇 글들을 읽었는데, 그가 커뮤니케이션으로 뜻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들이 있었어요. 그의 커뮤니케이션은 그의 철학에서, 그가 그것으로 뜻하고자 하는 것이 나한테는 분명치 않치만, 그와 같이 기본 용어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나한테서, 근본적 구성론자한테,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면에서는, 오해를 야기하는 용어임을 들어알고 있습니다. 그 용어가 사람들한테 항상 떠올리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고 <말인즉, 무언가를 전달받고> 있을 때, 그 무엇이 내 머리 속에 있고 나는 그것을 형식을 갖춘 또는 공적 코드로 번역하고 그리고 이어 당신은 그 코드를 해석하고 나면, 당신은 당신 머리 속에 내가 갖고 있는 것고 똑같은 것을 갖게 됩니다.     

 

I think, this is a non viable view of communication.

이러한 견해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전혀 살클 수 없는 견해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AP: How would you consider communication or, what kind of definition, or what kind of word would you use instead to describe it in functional terms?

AP: 교수님은 커뮤니케이션을 어떤 식으로 고찰하십니까? 커뮤니케이션을 기능적 용어들로 기술하는 대신, 사용하는 정의나 단어는 어떤 종류의 것인지…

 

EvG: Communication to me is the sending of signals. They may be of any kind, they may be words of a language or they may be signs on paper or they may be noises or whatever. But the interpretation of those signals is unfortunately not as simple as in the case of technical codes. Let me explain. If I give you a piece of paper on which it says that one dot is an "e", three dots are an "s", and so on for the whole alphabet, you have the Morse code and you can decode all telegrams transmitted in it. In the case of language, this doesn't exist. You interpret what I say according to your own experiences and not according to my experiences. I can never be sure what the meaning is that you read out of my words, because what moves from me to you are signals and not the meanings of signals. This to me is the basic fact of communication. As long as you use something like signals that run in a channel, you have to have a code to turn the signals into meaning. When we talk about media that is not the case. Everybody has to interpret what he reads or hears in the media according to his or her experience.

EvG: 나한테 커뮤니케이션은 시그널들 보내기입니다. 그 시그널들은 어떤 종류의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떤 언어의 단어들일 수도 있으며 또는 종이 위의 표시들일 수도 있으며 또는 잡음들일 수도 또는 그밖에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그널들에 대한 해석은 불행히도 기술적 코드들의 경우에서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설명을 하지요. 내가 당신한테 종이 하나를 줍니다. 그런데, 그 위에는 모든 알파벳을 대신해서, 이를 테면, "e"에는 점 하나, "s"에는 점 3개로, 등등과 같이 점들이 쓰여 있습니다. 당신은 모르스 코드를 갖고 있고 그렇게 송신된 모든 전보를 풀 수 있습니다. 언어의 경우에는 이와 같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가 말한 것들을 당신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해석하지 내 경험에 따라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 말들에서 읽어낸 그 의미가 무엇인지 결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나한테서 당신한테로 흘러간 것은 시그널들이지 시그널의 의미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나한텐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바탕을 조성하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통신로에서 들고나는 시그널들 같은 것을 쓰고 있는 한, 당신은 그 시그널들을 의미로 바꾸는/해석하는 하나의 코드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매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것은 벌어졌던 실상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매체에서 읽거나 들었던 것을 각기 그들 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AP: I see; and, by way of experience, you told me before that you worked in the media world as a journalist...

AP: 알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전에 저널리스트로서 매체 세계/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을 저한테 말씀하셨지요…

 

EvG: I was a journalist. After the war, I earned my living as a journalist. I was a correspondent of the well-known Swiss weekly "Die Weltwoche". They had two correspondents in Italy, one did the politics from Rome, and I covered everything else.

EvG: 난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전쟁 후, 저널리스트로 내 생계를 꾸렸지요. 나는 유명한 스위스 주간지 "Die Weltwoche"의 통신원이었습니다. 그 잡지는 이태리에 두 명의 통신원을 두고 있었는데, 한명은 로마에서 정치를 다루었고 나는 그밖에 모든 것을 다루었지요.

 

AP: And then this experience was integrated in the evolution of your constructivist vision, it was a step towards constructivism?

AP: 그리고 이어 그 경험은 교수님의 구성론적 조망의 발달과 통합되었고, 그것이 구성론을 향한 첫 걸음 아니었나요?

 

EvG: Well, it was integrated in the sense that it taught me to write a little bit. It taught me to write in a way that people could understand, which was very helpful. I didn't do much constructivist thinking or constructivist propaganda in those days. Occasionally I did, when I wrote articles about science, scientific events. Then I tried to put in a constructivist view but...

EvG: 글쎄요, 글쓰기를 좀 배웠다는 뜻에서 그것은 일부를 이루고 있지요. 거기서 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걸 배웠어요. 그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 시절에 나는 구성론적으로 생각하거나 구성론을 선전하는 것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과학이나, 과학적 사건들에 관한 기사들을 쓸 때, 이따금씩, 했지요. 그때마다, 구성론적 견해를 끼워넣으려 했어요. 하지만…

 

AP: But...I mean, for example you considered the role of reality when you worked as a journalist or you were aware that you were constructing your reality?

AP:하지만… 이를테면, 저널리스트로 일할 때나 자신이 자신의 실재/현실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실재/현실의 역할을 숙고하시게 되셨다 그 말씀이시죠.

 

EvG: I was aware of constructing a particular view of reality and trying to express it as clearly as possible.

EvG:실재/현실에 대한 특정 견해를 내가 구성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가능한 분명히 표현하려 했지요.

 

AP: So you already were aware that you were offering a certain point of view, a certain perspective, and so you were aware...

AP: 그렇게, 교수님은 자신이 어떤 관점, 어떤 조망을 권하고 있음을 이미 알아차렸지요, 그렇게 알아차리신 거라고…

 

EvG: Well...no, I was always aware that I was offering my view of reality.

EvG:음… 아니죠. 내가 실재/현실에 대한 내 견해를 권하고 있다는 걸 나는 항상 알아차리고 있어요.

 

AP: Yes, this awareness is rooted in your childhood as you told me because when you were a kid, you grew up in several different languages. And you say that's the reason you became aware of constructivism...

AP: 아 예!. 이러한 알아차림은 교수님이 저한테 말씀했던 교수님의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어릴 때 여러 언어들로 성장하셨기 때문이라는. 그리고 그것이 구성론을 알아차리게 된 이유라고 말씀하셨죠.

 

EvG: That's where I first became aware of the fact that certain things, are not the same, when you talk about them in English, as they are when you talk about them in German. There are very noticeable differences. And it's the same with Italian. As I was in school in the Alto Adige, for some time I played with Italian children and that is when I began to learn Italian. So I realized that they were very different worlds of words.

EvG: 그곳이 바로, 그 어떤 것/사건들도, 그걸 당신이 영어로 말하든, 독일어로 말하든,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아차리게 된 지점이예요. 아주 두드러진 차이들이 있어요. 그것은 이태리어에서도 똑같아요. 알토 아디제에서 학교 다닐 때 이태리 아이들과 한 동안 놀았고 그때 이태리어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 언어들이란, 그래서, 단어들로 조성된 전혀 다른 세상들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AP: These worlds derive from different languages so could you give me some examples of the deconstruction of differences between languages?

AP: 이들 세상들은 상이한 언어들에서 얻어지기에, 그렇기에 교수님이 나한테 언어들 사이 있는 차이들을 해체해서 몇몇 사례들로 보여주실 수 있는 거겠지요?

 

EvG: Well, in my book I gave quite a number of examples and it's always...it is not easy to pick them out of memory. But there is one that I remember. A friend of mine...this was long after school, in fact it was after the war...a friend of mine, who was a professor of classics and German literature, had to translate a German poem into Italian. The poem was a romantic ballad about something in Greece and it talks about the gods and it says the gods live on a high mountains where "wisps of fog kiss their cheeks". He spoke Italian very well, but he came to me, because he had a problem: how could one translate "fog" in that context? The Italian words for fog make you think of a sore throat and a cold in the nose and the notion of fog kissing your cheek as something romantic is simply inconceivable.

EvG: 음… 나는 내 책에다 아주 많은 사례들이 썼지요. 사례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억기(憶起)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내 친구 한 명이… 수업이 끝난 지 한참 되었는데… 실은 그때는 전쟁이 끝났었을 때예요… 그 친구는 고전 문학과 독일 문학 교수였는데… 그 친구는 독일 시를 이태리어로 번역해야 했어요. 그 시는 그리스에서 어떤 것/사건과 관련된 낭만적인 발라드 풍이었고 신들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신들은 "wisps of fog kiss their cheeks <뽀얀 구름 자락들이 그들 뺨에 키스하는>" 높은 산 위에 살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 친구는 이태리어를 아주 잘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서 나한테 왔어요: 그 맥락에서 "fog"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 안개에 대한 이태리어 단어들은 목구멍의 싸한 느낌과 코 속의 차가운 느낌이 들게 만들기에, 안개가 당신 뺨에 로맨틱한 어떤 것처럼 키스를 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요.

 

AP: Sure, fog is something negative.

AP: 당연합니다, 안개는 부정적인 어떤 것입니다.

 

EvG: In the Italian world it is always something negative

EvG:이태리어 세계에서 그것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이죠.

 

AP: Sure, even something dangerous.

AP: 맞습니다.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죠.

 

EvG: There are thousands of examples like it. Those, if you like, are examples of connotation, because Italians and Germans can still talk about fog and mean the same thing on the autostrada. Yet the connotation is very different. But there are many other examples where the actual, the logical contents of the words is not comparable. And if you live in a world where you use both or three languages every day, you become aware of the differences. It would be difficult not to become aware of them. And then you ask as how does that work? Everybody goes on as they were describing reality, but then, when you speak other languages it is not the same reality you are describing. That is how I began to become interested in epistemology.

EvG: 그와 비슷한 수 천 가지 사례들이 있지요. 그것들이 언외의 뜻을 갖는 사례들인 것은, 이태리 사람들과 독일 사람들이 고속도로 위에서 안개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경우는 같은 뜻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언외의 뜻은 전혀 다르지요. 그러나 단어들의 실제, 논리적 내용들이 비교될 수 없는 사례들도 그밖에 많이 있지요. 그리고 당신이 매일매일 둘 또는 세개이 언어들을 쓰고 있는 세계에서 산다면, 당신은 그 차이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 차이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어 당신은 묻습니다: 그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지? 모든 이들은 그들이 실재/현실을 기술/묘사하고 있었던 바 그대로 계속하지만, 곧이어 당신이 다른 언어로 말하는 그 때 그것은 당신이 기술/묘사하고 있는 그 똑같은 실재/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가 인식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 방식입니다.  

 

AP: I think there's a big difference, for example, between the expression "I like it" in English and "mi piace" in Italian, or "es gefallt mir" in German.

AP: 예를 들어, 영어로 "I like it", 이태리어로 "mi piace", 또는 독일어로 "es gefallt mir"라는 표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좋아하지, 그거"와 "맘에 드네, 그거"와 차이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살클리>

 

EvG: Yes, you have an enormous difference when you say: "mi piace". "Piacere" is the activity of other thing, it's not yours; in English you say "I like it", and the activity that you describe is your own. Think what difference it makes if you go along the street and say "mi piace questa ragazza" as compared to "I like that girl".

EvG: 그렇죠. "mi piace" 하고 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Piacere"는 다른 무엇의 활동이지, 당신의 활동이 아니죠; 영어에서 "I like it" 하고 말하면 당신이 기술하고 있는 그 활동은 당신 자신의 것입니다. 거리를 걸으면서 "mi piace questa ragazza" 하고 말하는 것과 "I like that girl" 하고 말하는 경우 어떤 차이가 생기는 지 생각해보세요. <한국어로, "저 소녀가 맘에 드네"와 "저 소녈 좋아한다네"의 차이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살클리>

 

AP: Yes, it sounds different.

AP:예, 달리 들리는군요.

 

EvG: It's a conceptual difference that hardly anyone becomes aware of.

EvG:간신히 알아차리게 되는 개념적 차이지요.

 

AP: Yes, and I think that in German and in Italian it works in the same way: "dieses Madchen gefallt mir" and "mi piace questa ragazza" are the same, while in English you have: "I like this girl".

AP:그러네요. 저는 그 경우 독일어와 이태리어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I like this girl" 하고 표현하는 데 반하여, ."dieses Madchen gefallt mir"와 "mi piace questa ragazza"는 같습니다.

 

EvG: Yes.

EvG: 맞습니다.

 

AP: It's intriguing.

AP:재밌는데요.

 

My next question is about the future of the constructivist orientation: what kind of suggestions would you give to those young scholars who would like to follow the theoretical trend of constructivism, nowadays.

제 다음 질문은 구성론이 가리키는 방향의 전망에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날 구성론의 이론적 조류를 따르고 싶은 그러한 젊은 학자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은?

 

EvG: Well, I think they have to work it out for themselves. You see, one of the main principles of the constructivism is that you construct your knowledge yourself and if that has a number of implications for general knowledge and science as well. Heinz von Forster has made this very clear. The moment you begin to think that you are the author of your knowledge, you have to consider that you are responsible for it. You are responsible for what you are thinking, because it's you who's doing the thinking and you are responsible for what you have put together because it's you who's putting it all together. It's a disagreeable idea and it has serious consequences, because it makes you truly responsible for everything you do. You can no longer say "well, that's how the world is", or "sono cosi"; you know, that's not good enough.

EvG:글쎄요.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구성론의 주요 원리들 가운데 하나는 당신 지식은 당신이 스스로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 지식, 그리고 또한 과학과 관련해서도 연루된 것들이 많음에도 그렇습니다. 하인즈 폰 푀르스터는 이를 아주 명확히 했어요. 당신이 자신을 당신 지식의 저작자로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그것에 책임이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어요. 당신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책임이 있는 것은, 생각하기를 하는 이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고, 당신이 짜만들었던 것에 책임이 있는 것은, 그것을 모두 짜만들었던 이도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의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심각한 귀결을 갖고 있는데, 이런 생각으로 당신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정으로 책임지게 됩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음… 세상사 그런 식이지", 혹 "그렇지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AP: And in which way would students be responsible for what they do?

AP:그러면, 학생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져야 할까요?

 

EvG: They are responsible because it's they who have put together, that is constructed, their knowledge. No one else could do it for them. You can suggest formulations, but you cannot transmit concepts or thoughts. Before lunch we talked about media. I think that is the difference a constructivist orientation could make apparent: the media can teach you to say things, they can give you phrases, combinations of words, but they cannot teach you the understanding of what these words mean. Very often people use words without ever having bothered to understand what they might mean.

EvG: 그들은 책임지고 있어요. 구성되고 있는, 그들 지식을 짜만드는 것은 그들이고, 책임이란 바로 그것이죠. 어느 누구도 그들을 대신해 그걸 할 순 없지요. 당신이 공식이나 체계적 논술, 또는 명확한 표현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개념이나 생각들을 전해줄 수는 없지요. 점심 전에 매체들에 대해서 이야길 나눴지요. 나는 구성론적 방향이 명백히 만들 수 있는 차이가 바로 그 점이라 생각합니다: 매체들이 당신한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말할거리들이죠. 매체들은 단어들의 조합, 문구들을 줄 수 있지만, 당신한테 그 단어들이 뜻하는 것을 이해하는 걸 가르칠 순 없어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일 수 있을 지 맘을 졸이거나 맘을 쓰지 않은 채 그것들을 사용합니다.    

 

AP: Sure, but the media also make people have opinions about items people know nothing about.

AP:그렇습니다. 하지만 매체들은 또한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사건들에 관해 의견을 갖도록 하지요.

 

EvG: Yes, it's very easy! You treat people like parrots. You get them to repeat certain words, and the words become stimuli for certain actions. When they hear these words, they carry out the action. Like automata, without understanding. The whole of Behaviorism was based on that notion. And it did some remarkable things.

EvG: 맞습니다. 그건 아주 쉽지요! 당신은 사람들을 앵무새들처럼 취급하고 있군요. 당신은 그들이 몇몇 단어들을 반복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 단어들은 일정한 행위들 촉발하는 자극들로 기능하지요. 그들이 이런 단어들을 들을 때 그들은 그 행위를 이행합니다. 자동기계처럼, 이해 없이. 모든 행동주의는 그러한 관념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몇몇 주목할만한 성과를 올렸지요.     

 

AP: So, do you think that media could be still partially analyzed through a behaviorist approach?

AP: 그래서, 매체들이 행동주의적 접근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여전히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 교수님 생각이십니까?

 

EvG: Well, I think much of what media attempt is based on behaviorist principles.

EvG: 글쎄요, 내 생각은 매체들이 시도한 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행동주의 원리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거지요.

 

AP: Still nowadays?

AP: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렇다는 말씀?

 

EvG: Yes! Because the behaviorists were very successful with rats and pigeons, but they were never successful in making people understand. That's why they never achieved real learning in schools.

EvG: 그렇습니다! 행동주의자들이 쥐와 비둘기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지만, 그들이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요.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학교에서 진짜 배우기를 결코 성취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AP: So you mean that Behaviorism didn't work so well in schools but better in the media? And so constructivism is the opposite?

AP:그래서 그 말씀은 행동주의는 학교에서는 잘 작동하지 못했지만 매체에서는 비교적 잘 작동했다는 뜻입니까? 그리고 구성론 또는 주의는 그 반대란 말씀이신지?

 

EvG: I don't say that it works better...

EvG:그것이 매체들에서 더 잘 작동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AP: Oh sorry, I misunderstood...

AP: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했습니다.

 

EvG: I think the media use certain behaviorist principles...

EvG:매체들이 몇몇 행동주의 원리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AP: ...and they work!

AP: …그리고 그것들은 작동하고 있지요!

 

EvG: Ah, they do work, yes! I mean if you repeat something often then someone else is going to repeat it. It's as simply as that.

EvG: 아, 그것들은 작동하고 있지요, 맞아요! 내 말은 당신이 어떤 걸 자주 반복할 경우 또 다른 이는 그걸 반복하려 한다는 거지요. 그것만큼 간단한 게 없지요.

 

AP: Yes.

AP: 그렇죠.

 

EvG: People who hear five times every evening that, for instance that, "x" is the best dishwasher, sooner or later it will have an effect on them. Whether they understand anything about dishwashers or not is irrelevant; "x" becomes a fixture for them.

EvG: 매일 저녘, 예를 들어, "X"는 최고의 접시닦이다란 소리를 다섯 번씩 듣는 사람들한테는, 얼마지나지 않아, 그로 인해 한 가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 사람들이 접시닦이들에 관해 뭔가를 이해하든 아니하든 그것은 무관한 거지요; "X"는 그들한테 고착되었죠.  

 

AP: I see. Let's consider advertising. In Italy, in these days there is a very popular advertisement of a certain mobile phone, and this mobile phone had a very popular jingle (music).

AP:알겠습니다. 광고를 고찰해보지요. 이태리에서는, 요즘 핸드폰 광고가 아주 인기리에 행해지고 있어요. 이 핸드폰에서는 아주 인기 있는 벨소리(음악)이 흘러나오지요.

 

EvG: Oh yes.

EvG:오 그래요.

 

AP: Many people in Italy started to sing and to whistle this jingle which was repeated thousand of times every day. Almost everybody, including myself, maybe one day were singing or whistling along the streets. The number of people singing this jingle was extremely high, but the number of people buying that phone was extremely limited. So from this point of view how would you...

AP: 이태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수 천 번씩 반복되는 이 벨소리를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지요. 저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하루내내 거릴 걸으며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불며 보낼 겁니다. 이 벨소리를 흥얼거리는 사람들 수는 아주 많지만, 그 핸드폰을 사는 사람들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지요.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교수님 생각은…

 

EvG: You mean it didn't work as advertising gambit.

EvG: 당신 말은, 그것이 광고가 노린 선점 효과가 나타나지/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AP: No, in the field of advertising, this is the problem, most advertisements are becoming a sort of artistic product independently from the product they promote and so people learn for example how beautiful the model is, they learn by memory the jingle and they don't buy the specific product; from this point of view it seems the stimulus was received but the reaction was not the expected one.

AP:아니죠. 광고 분야에서, 문제는 이렇습니다; 대다수 광고들은 그것들로 판매를 촉진시키려는 상품과는 독립된 일종의 예술적 상품이 되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게 사람들은, 이를 테면, 그 모델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배우고 그 벨소리를 기억해서 배우지만 그 특정 상품을 사지는 않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극은 받아들이지만 그 반응은 기대되었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EvG: Well, I think that must happen quite often, but on the other hand some of those things must work with regard to the sales because otherwise they wouldn't spend the amounts of money they do spend on that. Don't you think?

EvG: 글쎄요, 그런 일은 상당히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는 판매와 관련해서 유효할/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자금을 광고에 쓰지 않겠죠. 안그런가요?

 

AP: Yes, I think so, I agree with you, but at the same time advertising is a very good example of constructivism in practice, because people who do advertising make what they call "target analysis". It helps them to decide the kind of people who are the target of these campaigns and these people are observed according to the categories of the observer, not according to what they do. Sometimes, very often, advertising campaigns fail and they waste amounts of work. For example, people speaking among each other create more effective channels for advertising than advertising campaigns.

AP: 그렇죠.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의하지만, 동시에 광고가 구성론의 아주 훌륭한 실제 사례이기도 한 것은, 광고를 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표적 분석"이라 부르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이러한 캠페인들의 표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광고 행위자의 결정을 돕습니다. 표적이 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관찰자의 범주들에 따라 관찰됩니다. 가끔, 아주 자주, 광고 캠페인들은 실패하며 그것들은 상당한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로서로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광고 켐페인보다는 보다 효과적인 광고 채널/통로들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vG: Yes

EvG:그렇지요.

 

AP: Would you like to add something?

AP: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EvG: No, I would not. I was going to say that I'm not competent to say much about that area because I haven't had an opportunity to get into it. The person who I think has and who knows all about constructivism is Siegfried J.Schmidt. He published a number of things which deal exactly with that question of advertising and the construction of knowledge. You should look at those, they're published in German.

EvG: 없습니다. 그럴 것이… 내가 그 분야에 진입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 그에 관해서 많이 말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는 걸 말할려고 했지요. 내 생각으로 구성론에 관해 모두 알고 그럴 기회를 가진 인물은 지그프리트 제이.슈미트입니다. 그는 광고와 지식 구성의 문제를 정확히 다룬 많은 것들을 출판했지요. 그것들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겁니다. 그것들은 독일어로 출판되었지요.

 

AP: Sure, I will look at his books of course. What do you think about the diffusion of constructivism today in Italy, in Germany and in the U.S.?

AP:물론이지요. 그의 책들을 눈여겨 보겠습니다. 오늘날 이태리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구성론의 확산과 관련해서 어찌 생각하시고 계신지?

 

EvG: Well...look, I can only give you my own very subjective view, and the view is based largely on how much mail I get, what sort of questions I get, what kind of invitations I get if you will, so it's very personal and I'm not the only constructivist, so I don't know how characteristic this would be of the others. I can only repeat that Germany and Austria are the only places where constructivism is taken seriously as a philosophical orientation. In Italy, I think it is discussed quite a lot, and people are interested in it, but the most interest I have found is in the area of psychotherapy and of education. I don't know, you're the first media person I come across in Italy, I don't know any others.

EvG: 글쎄요… 음…, 내 주관적 견해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인데, 그 견해는 대개는 나한테 온 메일의 수, 나한테 온 질문의 종류들, 내가 받은 초대의 종류들에 의존하지요. 그래서 그것은 매우 개인적입니다. 아울러 나만이 유일한 구성론자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다른 이들이 어떻게 특징지을 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단지 반복할 수 있는 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구성론이 철학적 정향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유일한 곳이란 점입니다. 이태리에서는, 내 생각에, 그것은 상당히 많은 토론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대다수 관심은 심리치료와 교육 영역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모르겠네요. 이테리에서는 당신이 내가 만난 최초의 매체 관련 인물입니다. 이외에 아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AP: I am proud and worried for this at the same time...

AP:자부심을 느끼며 동시에 걱정이 되네요.

 

EvG: I don't know Umberto Eco or what he thinks of constructivism. Umberto Eco knew all about Ceccato because he came to the Centro di Cibernetica. When I was there, this was in the late fifties or early sixties, he came as a very young man and was not very likeable. He thought he knew everything. But I forgave him when I read "Il nome della rosa" which I think is a wonderful book. So you should ask him what he thinks of constructivism, he must have heard the name at least, by now. I think that would be very interesting.

EvG: 나는 움베르토 에코도 그가 생각한 구성론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그가 Centro di Cibernetica에 방문한 것으로 보아 움베르토 에코는 케카토에 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때 나는 거기 있었어요. 아마 50년대 말이나 60년대 초쯤이었어요. 그때 그는 아주 젊었었고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지요.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경탄할 책이라 생각되는 "장미의 이름"을 읽고 난 그를 용서했지요. 그렇기에, 당신은 그가 구성론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 지 그한테 물어야 할 겁니다. 그는 적어도 이제까지 구성론이란 이름은 듣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울 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AP: Please let's talk about your experience, so you said in the German speaking world it was very well considered and still it is considered. In Italy...

AP: 교수님의 경험에 관련해 말씀해주시죠. 아주 깊이 숙고된, 그리고 여전히 숙고되고 있는 독일어 세계에서 말씀하셨듯이…. 이태리에서는 어떤 지…  

 

EvG: I think in Italy there's quite a number of people who are seriously interested in it. From my personal knowledge, there are people in psychotherapy and there are people in education and then there is the group, who are the heirs and the pupils of Ceccato in Milan, who are propagating constructivism too in their own way. In this country (USA, ndr), it's much less general: well, this is a large country so you can't really compare it to the others, there's a lot of talk about constructivism in education, in educational research and specifically in mathematics education and, recently, the last five or six years, also in science education. But as I said, I do not believe there's a single department of philosophy here where constructivism has been mentioned or would be mentioned.

EvG: 이태리에는, 내 생각으로, 구성론에 진지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개인적 지식에서 보자면, 심리치료 분야에 사람들이 있고 교육에도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그밖에도 한 그룹이 있는데, 그들은 밀란에 있는 케카토의 상속자들과 학생들입니다. 그들 또한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구성론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미국)에서는 그보다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큰 나라여서 사실상 비교한다는 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겁니다. 구성론에 관한 많은 담론들이 교육 분야에서 교육 연구 분야에서, 그리고 특히 수학 교육 분야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그리고 최근 5-6년 사이 과학 교육에서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말한 대로, 여기에는 구성론을 언급했고, 혹은 그것을 언급할 정직한 철학 분과가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AP: I see, and what about Spain? Do you know?

AP:알겠습니다, 그럼 스페인에서는 어떻습니까? 아시는 것이?

 

EvG: I don't know. In Portugal there is a Piaget institute which is very interested in constructivism and does a lot of things in schools. I have been there several times and they're very active. In Spain I do not know. I know that in Barcelona there are some people who are interested in constructivism.

EvG:아는 것이 없네요. 포르투갈에는, 구성론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학교들에서 많은 것들을 행하고 있는 삐아제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여러 번 들렸는데 그들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스페인에서는 아는 것이 없네요. 바르셸로나에 구성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AP: Thank you very much and I sincerely wish constructivism will become a more and more popular epistemology.

AP: 정말 고맙습니다. 아울러 구성론이 더더욱 인기 있는 인식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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